3800만원대 미국산車 76만원 내려… 美도 “얻은 것 맞나?”
그러나 정작 국내 완성차업계와 부품업계를 각각 대변하는 한국자동차공업협회와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은 5일 “추가협상 타결을 환영하며 조속한 비준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는 등 협상타결을 반기는 목소리를 내놨다. 협상 내용에 비판받을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판알을 튕겨보면 그래도 한국 측이 이익이라는 설명이다.
○ 국내 자동차 시장 다 내줬나?
그러나 이로 인해 한국에서 미국차의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어날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서는 미국 수입차 회사들조차 회의적이다. 미국차의 판매가 부진한 것은 가격 때문이 아니라 성능과 디자인이 좋지 않고 브랜드 이미지도 낮은 탓이라는 게 정설이다. 실제로 지난해 동아일보가 자동차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3%는 “미국차 값이 10% 내려도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국산차나 유럽 또는 일본차를 사겠다”고 응답했다.
한 미국 브랜드 수입차업체의 임원은 “한미 FTA 발효 직후 관세가 현행 8%에서 4%로 인하돼도 실제 인하할 수 있는 소비자가격은 최대 2% 정도”라며 “이 정도는 수입차업체들이 일반적으로 판촉행사를 할 때 내리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현재 판매 가격이 3800만 원인 포드 ‘신형 토러스 기본형(SEL)’의 경우 협정 발효 직후 가격 인하 여력이 76만 원 정도 생기는 셈이어서, 이 가격대의 차를 사려는 사람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게다가 미국차의 부품 가격이 동급 한국차의 3∼5배 수준이어서 이 정도의 가격 변화로는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한미 FTA를 이용해 미국 브랜드 차가 아닌 일본 또는 유럽 브랜드가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차가 한국 시장으로 들어오는 ‘우회 수입’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도요타 혼다 등의 미국 공장은 세계 3대 자동차시장의 하나인 미국 현지 판매를 겨냥한 것이며, 한국 소비자가 원하는 옵션 추가에 드는 비용과 물류비를 무릅쓰고 굳이 한국 시장용 차를 만들어 태평양을 건너게 할 이유는 많지 않다는 설명이다.
○ 한국차 수출 증대 효과 없나?
그러나 완성차가 아닌 자동차부품 기업들은 한국산 자동차부품에 붙는 1.3∼10.2%의 관세가 협정 발효 즉시 사라져 큰 이익을 볼 수 있게 된다. 미국 앨라배마와 조지아 공장의 부품을 한국에서 조달하는 현대·기아차도 중간에 붙는 관세가 없어져 그만큼 현지 생산의 수익성이 개선된다. 부품업계의 올해 대미 수출액은 4조5500여억 원으로 추산되며, 현대·기아차는 올해 1∼11월 미국에서 35만여 대를 현지 생산 판매했다.
현대·기아차의 미국 판매량은 관세 2.5%인 현재 상태에서도 2008년 67만여 대, 지난해 73만여 대, 올해 1∼11월 81만여 대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시보레 크루즈’(국내 이름 라세티 프리미어) 등 같은 모델을 제너럴모터스(GM)의 미국 공장과 한국 공장에서 동시에 생산하게 되는 GM대우자동차도 “한미 FTA가 발효되면 수익성이 좋아지고 GM 내에서의 입지도 강화된다”는 입장이다.
지식경제부가 6일 자동차부문에서 한미 FTA 추가협상 결과로 인한 수출 증대 기대효과를 연간 8억1000만 달러(약 9100억 원)로 추산한 데 대해 자동차업계는 “지금 협상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효과마저 못 누리게 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07년 보고서에서 당시 합의 결과를 바탕으로 한미 FTA 비준이 1년 지연될 때마다 발생하는 기회비용이 연간 15조여 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 독소조항-차별 논란은 남아
자동차 분야에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도입과 미국차에 대한 안전·환경기준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자동차업계에서도 반응이 엇갈린다.
한국 시장에서 미국차에 대한 안전기준과 환경기준 규제를 예외적으로 완화한 데 대해서는 국산차나 다른 수입차에 대한 차별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또 미국이 한국산 차량에 대한 관세인하를 늦추면 현대·기아자동차가 미국 현지에 공장을 증설하도록 압박하는 효과가 있어, 장기적으로 한국에서 수입되는 자동차의 비중을 낮추고 현지 생산을 높여 자국의 생산과 고용을 높이려는 미국의 전략에 한국이 말려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