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더해 이미 협상이 종결된 한국-유럽연합(EU) FTA에서 미국과 동등한 대우를 원하는 EU가 자동차 분야에서 조정을 요구해올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익의 균형을 맞추었다고는 하지만 이 모든 양보에 비해 우리가 돼지고기와 제약에서 얻어낸 양보는 초라해 보인다.
돌이켜 보면 정부가 선택한 전략에서 허물을 찾아내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대공황 이후 최대라는 불황을 맞아 자동차산업 전체가 도산하고 사실상 국유화되는 와중에서 과연 미국 의회가 자동차 분야 협상을 원안대로 통과시켜 주는 일이 가능했을까. 우리 정부는 재협상의 가능성을 언제부터 실질적으로 인지했으며, 자동차에서 양보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받아낼 것을 최대화하려는 사전적인 연구를 해본 적이 있는가. 왜 재협상의 가능성이 점점 농후해지는 상황에서 재협상은 절대 없다고 공언했으며, 체결이 불투명한 원안에 대한 비준 동의안을 무리하게 처리하려고 했는가. 그러나 이 모든 질문은 다 끝난 바둑에 훈수 두는 일처럼 무책임하고 부질없는 일일지 모른다.
진보 진영에서는 반대할 구실이 늘어난 상황에서 반대 목소리를 한층 더 높일 것이다. 그리고 한미 FTA를 안보와 연결시켜 평가하려는 보수 쪽에서는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한미 FTA를 더 열렬하게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둘 사이에서 판단의 혼란에 빠져있는 사람이라면 한 걸음쯤 뒤로 물러나 한미 FTA의 경제적 손익계산서를 다시 한번 뽑아보는 일이 순서일 것이다.
원안의 한미 FTA가 발효되면 우리 경제에 총 20조 원의 순이익이 발생할 것이라는 국책 연구소의 연구결과가 믿을 만하다면 추가협상으로 손익계산서의 부호가 흑자에서 적자로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추가협상으로 인한 손실이 수십조 원에 달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격적인 협상으로 인해 이번 추가협상이 깨졌다면 자동차뿐 아니라 자동차부품, 섬유, 전자 등 모든 분야에서 관세 철폐가 몇 년 동안 연기되었을 것이다. 20조 원의 혜택이 4년간 미루어진다면 거기서 발생하는 손실만 2조∼3조 원은 될 것이다.
그러나 국책 연구소의 추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만일 실제 이익이 추정 이익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면, 협정을 통과시키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국민적 분열, 사회적 혼란, 피해농가 지원을 위한 부담 등을 고려해 볼 때 협정이 국가에 별로 큰 이문을 남길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한미 FTA를 단독으로 떼어내어 평가하는 것이라면 필자도 이러한 회의론에 상당 부분 동조할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한미 FTA를 지지하는 것은 지난 정부에 이어 현 정부가 계속하여 추구하고 있는 자유무역의 큰 그림에 희망을 걸고 싶기 때문이다. 무역의 양은 수송비에 민감하다. 관세 철폐는 수송비가 감소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가져와 마치 협정 상대국과의 거리가 축소된 것과 같은 경제적 효과를 유발한다. 만일 한국이 EU, 미국과 차례로 FTA를 발효하고 연이어 중국, 일본과의 FTA 체결에 성공한다면 한국은 세계에서 EU, 미국, 일본, 중국, 인도와의 경제적 거리가 평균적으로 가장 가까운 국가가 될 것이다. 세계시장의 4분의 3에서 중심에 위치하는 셈이고, 빌딩으로 따지면 최고의 역세권에 터를 잡는 셈이다.
물론 터가 좋다고 사업이 반드시 번창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좋은 입지는 외국의 자본과 기술은 끌어 모으고, 우리의 자본과 기술이 우리 곁에 머물도록 한다. 자본과 기술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급화시킨다. 그리고 좋은 입지를 찾아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본과 기술의 이동성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계속 증가했고,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이유에서 정부가 자유무역의 큰 그림을 그리고 개방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높은 우선순위를 두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개방의 충격이 국민에게 안길 고통과 불안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은 두껍고 효율적인 사회안전망 구축임을 확실히 인지하고 이를 국토 개발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추진해주기를 희망한다.
송의영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교수·경제학 eysong@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