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건축주와 건축가의 특별한 첫 만남에 동석했다. 동아일보에 연재한 ‘진화하는 한옥의 재발견’ 시리즈를 읽은 건축주가 기자에게 건축가를 소개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었다. 대화를 매끄럽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당부에 나간 자리였지만 결과적으로 서로의 필요에 따라 만난 두 사람 못잖은 보람을 얻었다.
건축주는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1934년 지어진 도시한옥 한 채를 최근 사들여 개보수를 계획하고 있다. 도시한옥 경력으로는 어떤 이에게도 밀리지 않을 건축가는 대화가 이어질수록 건축주의 열성과 세심한 조사에 연방 감탄했다. 그는 마음먹고 장만한 새 보금자리를 단순한 부동산이 아닌 삶의 전환점을 만들 공간으로 보고 그에 걸맞은 심도 있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고지도와 규장각 자료 등을 뒤져 건물을 설계한 ‘건양사’ 대표의 당시 신문 기고 칼럼까지 찾아 읽을 정도였다. 그는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공간을 얻고 싶어서 한옥을 마련했는데 막상 개보수를 맡길 사람을 찾다 보니 ‘면적당 얼마에 해 주겠다’는 맥 빠진 얘기만 듣게 된다”고 말했다.
건축가의 고민도 다르지 않았다. 건축주의 고민에 대해 그는 “다양한 주체의 수요에 유연하게 부응할 수 있도록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하는데 오히려 실무자나 관련 공무원 가운데 한옥에 대한 케케묵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적잖다”고 했다.
한옥 붐에 대해 여러 말을 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한옥은 우리 생활에 부쩍 가깝게 다가왔다. 하지만 관심과 수요에 비해 생산 활동과 보전 노력을 지원할 제도적 장치는 미미하다. 7일 오후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국토해양부, 건축도시공간연구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주최로 열린 ‘한옥 활성화 실천방안’ 심포지엄은 한옥 붐을 환영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푸대접해 온 현실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보고서는 “‘한옥’이라는 건축물의 정확한 개념이 최근 비로소 제도적으로 온전히 정리됐다”고 밝혔다. 11월 15일 일부 개정된 건축법시행령에서 “기둥과 보가 한식지붕틀로 이뤄진 목구조(木構造)로서 한식기와 등 자연 재료로 마감하고 우리나라 전통양식을 반영한 건축물”로 한옥이라는 용어의 규정을 확실하게 만든 것이다.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한옥 지원 사업을 하나로 꿰어 힘을 더할 수 있는 계기가 비로소 마련된 것”이라는 평가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평가를 반갑게 기꺼워하기는 어렵다. 한옥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고려하는 수요자의 노력과 정책적 배려의 골이 어느 정도 깊은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