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보장된 국회 자율권 폭넓게 인정받은 탓법조계 "용인 수준 넘어선 폭력 이젠 엄정히 평가해야"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놓고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물리적 충돌을 빚으면서 고강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8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의회에서 폭력행위로 형사 처벌된 사례는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의 '공중부양' 사건과 민주당 문학진 의원·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국회 기물파손' 사건 등 손꼽을 정도다.
법원은 강 의원의 항소심에서 "강 의원이 행사한 폭행의 정도가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항의의 정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이고, 정식 절차를 통해 항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었다"면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문 의원과 이 의원에게도 각각 항소심에서 벌금 200만원과 50만원이 선고됐다.
헌정사에서 국회 폭력 사태가 끊이지 않았음에도 형사 처벌된 사례가 거의 없었던 것은 헌법에 보장된 국회의 자율권을 그동안 폭넓게 인정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에는 국회의 자율권을 상대적으로 많이 보장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탓에 '날치기 사태'가 빈번했음에도 고소·고발로 비화되지는 않았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는 다른 국가기관의 간섭을 받지 않고 헌법과 법률, 의회 규칙에 따라 의사일정과 각종 사안에 관해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민의의 전당은 사실상 폭력의 특권지대 대우를 받았던 셈이다.
국회의 자율권에는 입법권과 규칙 제정·의사 진행에 관한 자율권, 질서유지권, 자격 심사·징계 등에 관한 권한, 면책특권과 불체포 특권 등 다양한 권한이 있다.
의원들의 물리적 행위를 어디까지 폭력으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점도 난장판 국회에 관대해진 한 원인이다.
이번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폭력 사태도 의회(임시회) 기간인 데다 의원들이 국회에서 법으로 보장된 심사권을 행사하는 의정 활동의 한 과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명백히 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폭력행위'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준사법기관'인 검찰이나 사법부가 국회에서 벌어진 역대 불법행위에 적극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던 사회적 분위기도 국회 폭력이 반복되는 데 일조했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로서는 국회 폭력으로 인한 고소·고발이 없는데다 고소·고발 사례 중에도 기소할 만한 '중요 사건'이 많지 않아 적극적인 검찰권을 행사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사법부에서도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원칙적으로 사법 심사를 할 수 없고, 국회의 의사 결정에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을 때에만 제한적으로 심사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따라서 국회의원이 연루된 폭력사건에 사법부가 적극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않은 게 현실이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다툼 등의 옳고 그름을 모두 사법부가 해결하면 '국민이 선출한 권력'인 입법부가 위축돼 의회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도 대부분 국회 폭력이 면죄부를 받은 배경이다.
하지만 국회의 자율권이 '날치기 통과'와 폭력 사태 등에 악용되는 현실을 비판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회 차원의 해법을 서둘러 모색해야 한다는 주문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원이 법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국민 여론이나 법감정을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아 국회 폭력을 엄정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재경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국회의원들의 폭력행위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엄정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며 "국회 폭력을 더 내버려두면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국회 차원에서 해결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는 "법을 만들고 민심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솔선해서 법을 지켜야 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국회 폭력을 막을 강제적인 수단의 도입이나 형사처벌 강화를 주장하는 여론이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한 변호사는 "국회 폭력 사태는 본질적으로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어떤 식으로 갈등을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시급히 마련해 사법부로 오기 전에 해결하는 게 최선이다"고 말했다.
인터넷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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