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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는 길을 묻지 말라

입력 | 2010-12-13 16:56:02

2010년 컬럼비아 필드테스터 송년산행기
12월 3일, 북한산 인수봉 라운딩하며 팀웍 강화





산길을 걷다보면 ‘한 번의 산행은 한 번의 인생이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 가본 길이라면 오르기 쉽지만, 그렇다고 가본 길로만 계속 다니면 재미가 없다. 그래서 새로운 길, 가본 적이 없는 길을 찾아 떠난다. 등산은 몇 번이고 같은 길로 다시 갈 수 있지만 인생은 다시 살 수 없다. 처음 가는 산에서 갈림길이라도 만나면 어느 길로 가야할지 망설여진다. 누군가에게 묻고 싶지만 산에서는 물어볼 사람이 없다.
 
“도봉산에 등산로가 300개 있는데 그 모든 길을 답사했다.”고 누가 말하기에  “산에 길이 어디 있어! 가는 곳이 길이지!” 하고 응대한 적이 있다. 인생에 길이 없듯이 산에도 길은 없다. 다만 사람들이 다닌 흔적만이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닌 곳에는 뚜렷한 흔적이, 사람이 적게 다닌 곳에는 희미한 흔적이 있다. 뚜렷한 흔적을 따라가면 높은 곳엔 빨리 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에는 감동이 없다. 아름다운 꽃도, 구름도 잘 보이지 않고 동행자와의 정서적인 교감도 느낄 수 없다. 등산을 할 때 어떤 흔적을 따라갈 것이며 무엇을 느낄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이다. 그래서 등산의 진정한 의미를 논할 때 ‘정상에 서는 것보다 정상을 향해 오르는 과정’을 중요시 하는 것이다.

2010년 12월 4일, 북한산에서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컬럼비아 필드테스터 송년산행과 뒷풀이 행사가 있었다. 북한산은 등산객으로 몸살을 앓는 산이다. 그래서 이번 송년산행 코스는 정상인 백운대는 오르지 않고 인적이 드문 곳을 택했다. 초겨울 찬바람이 허리춤을 파고드는 날씨 속에서 사람이 비교적 적게 다닌 ‘희미한 흔적’을 따라 우리들만의 산행을 즐겼다.

숨은벽 능선을 넘어갈 땐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어 겨울산행 하는 맛도 느낄 수 있었다. 겨울산의 위험요소 1순위는 ‘바람’ 이다. 인생도 그렇듯이…?! 산행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겨울산은 혹한 그 자체보다는 바람이 더 문제다. 강풍이 불면 그동안 느끼지 못하고 있던 바짓가랑이, 허리춤, 목부위 등 조금이라도 틈이 있는 곳이면 찬바람은 파고든다. 초속 1m의 바람으로 체감온도는 대략 섭씨 2도정도 내려간다고 기억해두면 편하다.(구체적으로는 초속 1m당 약 1.6도, 고도 100m당 0.65도 내려간다) 체감온도란 몸이 느끼는 온도가 아니라 실제로 몸에 작용하는 온도다. 체온을 뺏어갈 뿐만 아니라 우리 신체에 그대로 영향을 준다. 깃발이 수평으로 펄럭이면 초속 5m 바람이다. 영하 5도의 산에서 초속 5m의 바람이 불면 우리 몸에 대략 영하15도로 작용한다.  


북한산은 서울의 진산이며 우리 민족 근.현대 600년 역사와 문화의 중심인 산이다. 산세와 풍광이 뛰어나 우리나라 현대등산의 발생지인 동시에 현주소다. 북한산의 정기와 지정학적 중요성은 개인의 기복(祈福)이 아닌 국가의 흥망과 관련된다고 한다. 우리 민족 역사상 삼국시대 이래 북한산을 차지한 국가가 그 시대의 패권 국가였다. 또한 동양에는 각 나라마다 3신산(三神山) 또는 5악(五嶽) 사상이 있다. 5악이란 그 나라 역사와 문화의 중심이 되는 ‘5대명산’을 일컫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동(東) 금강산, 서(西) 묘향산, 남(南) 지리산, 북(北) 백두산 그리고 그 중심에 북한산이 있다. 북한산은 삼각산이라고도 한다. 북한(北漢)이란 한강 북쪽에 있음이요, 삼각(三角)이란 백운(836m) 인수(810m) 만경(799m)의 거대한 암봉(岩峯)이 마치 3개의 뿔처럼 솟아 있어 그리 부른다. 이 두 명칭은 삼국시대부터 혼용되어 불려왔다. 세계 어느 나라건, 명산일수록 이명(異名)이 많은 법이다. 금강산도 계절별로 다른 이름이 있고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도 사가르마타, 초모랑마 등으로 불리운다.
9시20분 우이동을 출발 육모정고개-영봉-인수봉후면 하단부-숨은벽계곡-하루재-도선사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오후 4시. 6시간 정도 걸려 우이동으로 원점회기 했다.

지난 5월 15일 함백산-은대봉-금대봉 산행에서 얼레지 흰 꽃을 만나는 행운을 시작으로, 6월 26일 실시한 설악산 십이선녀탕-대승령-대승폭-장수대 산행에서는 만병초 꽃을 보고, 9월 11일 비 내리는 남덕유산자락에서 내계폭포, 사선대, 빙기실계곡, 갈게숲, 모암정, 부설담, 장군바위를 답사하며 우리 옛 문화와 선조들의 풍류를 더듬었다. 10월 30일, ‘산신의 영험이 많아 사냥꾼도 감히 짐승을 잡지 않는다’는 야성과 야만의 치악산에서 황골-비로봉-사다리병창-구룡사 코스를 주파했다. 매 산행시마다 컬럼비아 필드테스터들은 각자 맡은 분야의 의류와 장비의 성능을 꼼꼼하게 테스트하며 정말 보람 있는 한 해를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송년산행은 한 해의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내년에도 즐거운 산행을 하자는 자축과 다짐의 자리였다.

글쓴이 = 이규태(마운틴월드등산학교 원장)


▲동영상 촬영 = VJ 박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