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宣王(선왕)이 이웃나라와 사귀는 交(린,인)(교린)의 방법을 묻자 맹자는 事小와 事大의 방법을 거론했다. 우선 맹자는 오직 仁者(인자)만이 대국을 가지고 소국을 섬길 수가 있으며, 그렇기에 은나라 탕왕이 갈나라를 섬기고 주나라 문왕이 곤이를 섬겼다고 했다. 이어서 智者만이 소국을 가지고 대국을 섬길 수 있으며, 그렇기에 태왕이 훈육을 섬기고 구천이 오나라를 섬긴 것이라고 말했다.
大王은 주나라 문왕의 祖父(조부)로, 太王(태왕)으로도 적는다. 훈육은 중국 북쪽의 이민족이다. 태왕이 훈육을 섬긴 이야기는 이 ‘양혜왕·하’편의 뒷부분에 나온다. 句踐은 곧 越(월)나라 왕으로, 그가 오나라 夫差(부차)에게 패하여 嘗膽(상담)하면서 復讐雪恥(복수설치)를 꾀했다는 고사는 매우 유명하다.
‘惟智者라야 爲能以小事大하니이다’는 앞의 ‘惟仁者라야 爲能以大事小하니이다’와 짝을 이룬다. 惟는 唯(유)와 같다. 爲能以小事大의 爲는 ‘∼을 행하다’이다. 以小事大는 소국의 처지이되 비굴하게 굴지 않고 올바른 禮(예)로 대국과 사귀는 것을 말한다.
세종대왕은 조선 왕조의 정치문화 체제를 확립하고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를 재조정했다. 재위의 만년에는 중국 사신이 지은 시문을 ‘황화집’으로 엮어 활자로 간행해주기까지 하여 조선에 오는 사신의 품격을 격상시키도록 은근히 촉구했다. 맹자는 군주로서 仁者는 올바르게 事小하고 智者는 올바르게 事大한다고 했다. 특히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월등한 대국과 교제하는 방식은 결코 자주권을 버리고 屈從(굴종)하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현실적인 상황을 직시하면서 국가적 체통을 지켜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