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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목판화 달력으로 새해를 여는 사람들

입력 | 2010-12-17 03:00:00

■ 수제달력 만드는 여송서당 가보니




 올해로 7년째 목판화로 수제 달력을 만들고 있는 서예 동호인 모임인 ‘돌각회’ 회원들이 3일 서울 송파구 송파동 작업실에서 자신들이 제작 중인 달력을 들어 보이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2월. 벽에 걸려 있는 한 장밖에 남지 않은 달력은 ‘이제 슬슬 내년 달력을 마련할 때가 됐다’는 계절의 신호다. 클릭 한 번에 일정까지 관리해 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스마트폰 달력 애플리케이션에 밀려 벽이나 책상 위에 두고 보는 고전적인 달력이 설 땅은 매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부모님 생신, 부부의 결혼기념일, 연인이 된 지 100일, 200일이 되는 날을 잊지 않기 위해 빨간색 동그라미를 그려놓는 것만으로도 달력은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오늘을 특별한 날로 만들어 준다. 달력의 힘을 알기에 사람들은 내년도 어김없이 눈길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에 새 달력을 걸어 놓을 것이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달력 보급 비율은 열 집 건너 한 집도 안 될 정도로 낮았다. 정부 고위관리나 지체 높은 양반가에서나 제대로 인쇄된 달력을 쓸 수 있었고 일반 백성들은 이 달력에서 중요한 날짜만을 베낀 임시 달력을 쓰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연말만 되면 기업 등에서 홍보나 판촉 목적으로 대량으로 찍어내는 달력 때문에 ‘달력공해’라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제는 연말만 되면 발에 차일 정도로 흔해져 그 가치가 조금씩 퇴색되고 있는 달력이기에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달력을 손수 만들고 이웃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연에 기자의 귀는 쫑긋 세워졌다.

○ 내가 쓸 달력, 내 손으로


3일 서울 송파구 송파동의 한 건물 지하에 위치한 ‘여송서당’의 작업장. 이 서당 문하생 예닐곱 명이 저녁식사도 거른 채 달력제작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들이 만들고 있는 달력은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달력과는 다르다. 일 년 치 달력을 한 달씩 목판 열두 장에 조각도로 새겨 이를 종이에 인쇄해 만드는 목판화 달력이다.

작업장 한편에선 조각도로 파낸 나무 조각을 입으로 ‘후후’ 불며 목판에 그림을 새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다른 한편에선 조각을 마친 목판에 먹물을 묻혀 종이에 찍어내는 작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누구에게서도 시간에 쫓기는 듯한 조급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가끔씩 작업을 멈추고 단정한 찻잔에 담긴 차 한 모금을 마시는 모습에선 ‘망중한(忙中閑)’마저 느껴졌다. 달력 제작 모임인 돌각회 회장 김문기 씨(59)는 “같은 서당 문하생으로 서예와 목각을 취미로 배우다가 ‘재미 삼아 달력을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고 벌인 일이 어느덧 일곱 해째 달력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여송서당에서는 20여 명이 달력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내년 판화 달력 제작은 달력에 들어갈 주제 그림을 정하는 올해 6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내년 한 해 동안 쓸 달력을 만드는 데 꼬박 반년이 걸리는 셈이니 진정한 ‘슬로 프로덕트’가 아닐 수 없다. 내년 달력의 주제 그림은 바로 ‘소반(小盤)’. ‘개다리소반’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충주반’부터 소반의 발이 호랑이 다리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호족반’이라는 이름이 붙은 소반까지, 1월부터 12월까지 매달 조금씩 다른 느낌의 소반이 달력 모델로 등장한다.

지난해 만든 올해 달력 주제는 호랑이 해 경인년(庚寅年)에 맞는 호랑이였다. 김 씨는 “향로나 다기, 주병 같은 일상용품을 주제로 삼을 때가 많지만 문인화(文人畵)나 여성의 나신(裸身) 등을 달력에 등장시킬 때도 있다”고 말했다.

 ① 구둣솔을 사용해 달력을 찍을 목판 위에 먹물을 칠하고 있다. ② 목판 위에 새긴 화초 그림에 붓으로 빨간색 물감을 바르고 있다. ③ 목판 위에 종이를 덮어서 한참을 문지른 뒤 떼어내면 낱장 달력이 완성된다. ④ 목판에 먹물을 묻혀 찍어낸 초판 달력 위에 동양화 물감으로 화병의 색을 입히고 있다. 표지와 낱장 달력을 끈으로 꿰어내면 일 년 치 달력이 만들어진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한 장에 50~60시간 정성… 주는 이도 받는 이도 그래서 특별한 …

○ “달력 만들기가 도(道) 닦기”


이들의 작업 공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농촌의 ‘품앗이’가 절로 연상된다. 이듬해 달력의 주제가 정해지만 서로가 맡을 달을 정해 목판을 조각하는데 사정에 따라 달력 작업에 참여하는 이의 수가 적어지는 해에는 2, 3장씩 목판을 새기는 회원이 나오게 마련이다.

화선지에 먹으로 그린 소반 그림을 좌우가 바뀌게 뒤집어 목판에 붙이고 나면 본격적으로 조각도로 그림을 목판에 아로 새기는 공정이 시작된다. 좌우가 뒤집어지게 그림을 붙여야 인쇄했을 때 방향이 맞는 달력을 얻을 수 있다. 목판에는 그림과 함께 마음을 움직이는 글귀가 자리할 때도 있다. 11월용 목판에 새겨진 ‘충주반’ 그림 밑으로는 ‘충주반 위에는 어머니의 빛바랜 세월이 흐른다’는 멋들어진 문구가 걸려 있었다.

목판을 정교하게 파는 일이 달력 품질의 8할 이상을 좌우하는 판화 작업의 속성상 전체 작업공정에서도 최고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공정이 바로 이때다. 올해 처음으로 달력 만들기에 참여했다는 전창배 씨(59)는 “목판을 잡고 있는 동안은 4시간이고 5시간이고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며 “달력을 만드는 일이 마치 도를 닦는 과정처럼 느껴지곤 한다”고 말했다. 전 씨는 “그동안 배운 목각 기술을 활용해 최근 딸의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에게 신묘년(辛卯年) 토끼 그림을 새긴 판화 연하장을 만들어 보낼 계획”이라며 웃었다.

실수로 중요한 선을 뭉텅 파내기라도 하면 처음부터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하기에 일부 회원은 집중을 위해 머리가 맑은 아침시간에 향을 피워놓고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목판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50∼60시간. 하지만 동호인 대부분이 평일에는 시간을 내기 힘든 대학교수, 회사원, 자영업자 등이라 주말에 틈틈이 짬을 내 작업하다 보면 넉넉잡아 서너 달은 걸려야 목판 하나를 완성할 정도로 일의 속도는 더디다.

○ 만드는 즐거움, 나누는 기쁨


회원들의 달력 제작 노하우가 쌓이면서 매년 만드는 달력도 그저 날짜를 확인하는 도구에서 그 자체로 완결된 예술품으로 진화를 거듭해 왔다. 처음에는 목판에 1∼31일까지 일일이 날짜를 새겼지만 요즘 만드는 달력은 ‘입동’이나 ‘소설’ 같은 주요 절기의 날짜만을 목판에 새겨 여백의 미를 살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완성된 목판에 먹물을 고루 발라서 ‘삼합지(화선지 세장을 겹쳐 만든 종이)’에 찍어내면 달력의 낱장이 만들어진다. 먹물을 바를 때는 구둣솔을 사용한다. 허종부 씨(47)는 “사용하기에는 롤러가 편해도 목판 위에 먹물이 빠지는 데 없이 고르게 묻히는 데는 역시 구둣솔이 최고”라고 말했다. 먹물이 잘 스며들도록 종이를 문지를 때도 특별한 도구가 등장한다. ‘바랜’이라 불리는 문지르개가 쓰이는데, 여성의 긴 머리카락을 밀랍에 짓이겨서 만든다고 했다.

먹물로만 표현하기 아까운 꽃이나 난초 그림이 들어갈라 치면 이 부분을 제외한 채로 종이에 판화를 찍은 뒤 붓으로 동양화 물감을 터치해 마치 2도나 3도 판화(2가지나 3가지 색상) 같은 효과를 준다. 이렇게 만든 낱장 달력에 목판을 새긴 회원들의 낙관을 찍고 표지를 포함해 13장의 낱장 달력을 끈으로 엮어내면 마침내 내년 달력이 완성된다. 여송서당 이승만 원장은 “문하생들이 열과 성을 기울여 매년 만들고 있는 달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라며 “2년에 한 차례씩 달력 전시회도 열어 문하생들이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감상하고 타인들과 공유할 기회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 “자녀에게도 권하고 싶어”


이들이 매년 찍어내는 달력은 250여 부 남짓. 누구의 지원도 받지 않다 보니 매년 회원 1인당 15만∼20만 원씩 제작비를 갹출해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공정을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수작업으로 하는 특성상 절대적인 시간 제약으로 인해 생산량은 많지 않다. 완성된 달력은 전시회에 쓸 것 등을 제하고 난 뒤 참여한 사람의 머릿수대로 나눠 갖는데 많아야 1인당 20부 정도가 주어진다. 사실 가족이나 친인척, 지인에게 선물하기에도 빠듯한 물량이다.

하지만 정성으로 만든 달력이니만큼 선물받은 지인들의 반응은 뜨겁다. “학창시절 친구에게 달력을 선물했는데 나중에 그 친구 사무실에서 제가 준 달력이 액자 속에 곱게 모셔져 있는 것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달력 사진을 찍어서 ‘귀한 선물을 받았다’며 인터넷 블로그에 자랑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올해로 9년째 달력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는 조경석 씨(58)의 얘기다.

6개월에 걸친 노력 끝에 이들이 얻는 것은 달력 몇 부로 끝나지 않는다. 올해 처음 달력 제작에 참여했다는 이양근 씨(48)는 “고생하며 달력을 만들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세상에 내놓은 노력의 결과물의 가치를 알아보는 마음의 눈을 얻었다”며 “나 자신부터 목표보다는 과정을 더 중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한층 너그러워지는 등 변화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기회가 되면 중학생인 두 자녀들과도 달력 만들기를 가르치고 싶다”며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를 새긴 판화 작품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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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프 달력은 온라인 달력제작 업체의 달력 편집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간단히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셀프 달력에 들어갈 사진 크기를 조정하는 모습. 스마일캣 달력 편집 프로그램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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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끝으로 각종 기념일과 생일, 가족 행사 등을 입력할 차례다. 입력을 마치고 확정을 하면 다시 수정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정확한 날짜를 확인하는 것은 필수다. 요즘 셀프 달력 편집 프로그램은 각종 기념일을 쉽게 기억할 수 있게 도장을 찍거나 스티커를 붙인 것 같은 효과도 낼 수 있다. 이 밖에 월간, 연간 계획을 짤 수 있는 공간이나 할 일을 체크할 수 있는 공간도 달력에 추가할 수 있다.

셀프 달력은 탁상용 양면달력 기준으로 1부당 가격이 1만2000∼1만8000원에 이른다. 제작 완료 후 2, 3일이면 택배나 오토바이 퀵서비스 등으로 배송을 받을 수 있다. 3만∼5만 원 이상 주문 시 무료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많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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