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쇄도 전세계 돌며 ‘스타 대접’… 대부분 불면증-불안감 호소 ‘뒤숭숭’
올해 10월 12일 매몰된 광원 33인 중 첫 번째로 구조된 플로렌시오 아발로스 씨(등 보이는 사람)가 기다리고 있던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과 얼싸안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연애 10년째이던 이 커플은 이미 두 자녀를 뒀지만 결혼비용이 모자라 식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올 2월 야네스 씨는 돈을 벌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광산으로 향했다. 8월 5일 산호세 광산의 붕괴는 이들에게 너무나 가슴 아픈 비극이었지만 그는 69일 뒤인 10월 13일 기적같이 구조돼 마시아스 씨와 감격의 포옹을 했다.
지구촌에 감동과 환희를 줬던 이들의 생환 드라마는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뒷얘기를 남기며 화제가 되고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33인의 광원들은 현재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갖고 지구촌에서 명사 대접을 받으며 평생 잊지 못할 연말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모든 게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광원들은 하나둘 지하생활의 후유증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광원들은 현재 한 달에 약 1500달러의 수당을 받으면서 회복을 위한 병가(病暇)를 보내고 있다. 아직 그 누구도 다시 광산에 복귀했다는 소식은 없다. 이들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건강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으면서 당국의 사고 조사에도 협조하고 있다.
광원들은 지난 두 달간 각국의 초청을 받아 해외 각지를 누비며 정신없이 보냈다. 지난달에는 미국 CNN의 특집 프로그램에 초청돼 로스앤젤레스에 다녀왔고 최근엔 영국으로 건너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 이들은 평소 월급 100만 원 안팎의 저소득층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이번 기회에 처음 해외 나들이를 한 셈이다.
지하생활을 배경으로 한 영화 제작도 차질 없이 추진 중이다. 이들은 할리우드 스타배우 브래드 피트의 영화제작사와 판권 협상을 벌이고 있다. 광원들의 법적 대리인인 에드가르도 레이노소 변호사는 “각종 인터뷰 요청이나 상업적 계약에 대한 제안이 하루에 10건 이상씩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 적잖은 후유증, 미래에 대한 불안
이들을 올해의 인물 후보로 올렸던 미 시사주간 타임은 광원 대부분이 심각한 불면증을 호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33인 중 두 번째로 구출됐던 마리오 세풀베다 씨는 지하에 갇혀 있는 동안 생체리듬이 흐트러진 데다 트라우마가 겹쳐 밤에도 잠을 서너 시간밖에 못 잔다고 말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점차 이들의 숨통을 죄고 있다. AFP통신은 “처음엔 열광적이었던 칠레인들도 이젠 조금씩 광원 얘기에 싫증을 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뉴욕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유명세를 누린 에디손 페냐 씨는 “시간이 지나면 누구도 우릴 기억하지 못할 텐데 나중에는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일했던 산호세 광산은 이미 폐쇄된 지 오래고 광산을 소유했던 회사는 심각한 재정난으로 파산위기에 처해 있다.
열기가 수그러들면서 광원 구출을 계기로 치솟았던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의 지지율도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내려앉았다. 피녜라 대통령은 당시 광산의 작업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후에도 각종 붕괴사고와 광원들의 시위는 끊이지 않고 있다.
○ 대부분은 광산으로 돌아갈 듯
다만 광원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일터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다리오 세고비아 씨는 “내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 다시 광산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