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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서]미당 詩로 채워진 10주기 추모제, 왜 이 황홀한 언어들을 외면하나

입력 | 2010-12-22 03:00:00


귀촉도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 흰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리 .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히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드릴 걸 .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미당의 육신은 떠났지만 미당의 시는 살아 있습니다.” 21일 열린 미당 10주기 추모행사에서 문정희 시인이 추모사를 통해 시인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이 꽃은 내게 몇 촌 벌이 되는지/집을 떠난 것은 언제쩍인지/하필이면 왜 이 밤을 골라 찾어 왔는지/그런건 아무리 해도 생각이 안나나/오랫만에 돌아온 食口의 얼굴로/초저녁부터/내 家族의 房에 끼여 들어 와 앉어 있다’(‘어느날 밤’에서)

집 앞에 핀 후박나무 꽃을 돌아온 가족처럼 반겨 맞는 시인의 노래를 다시 들었다. 미당기념사업회의 주관으로 21일 서울 중구 예장동 ‘문학의집·서울’에서 열린 미당 서정주(1915∼2000) 10주기 추모행사에서다. 문태준 시인이 미당의 시편 ‘어느날 밤’을 낭송했다. 홍기삼 미당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전 이승의 언어를 놓아 버리고 눈으로만 말씀하셨을 때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먼저 간다. 잘들 있어라. 너무 힘들었다’고”라며 시인이 세상을 떠날 즈음을 회고했다. 문정희 시인은 “‘팔 할이 바람’(시 ‘자화상’),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시 ‘동천’)…. 미당의 시가 한국의 사방에 피어 있다는 생각을 지난 10년간 안 해 본 적이 없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시의 정부(政府)’로 불렸던 시인이 타계한 지 10년째 들어서야 미당기념사업회가 꾸려졌다. “친일 행적으로 인해 낙인이 찍혀 미당을 기리는 움직임을 갖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이런 경우 대개 지자체에서 재정적인 뒷받침을 하는데 미당의 일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는 분위기였다”며 사무국장을 맡은 동국대 윤재웅 교수는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관악구 남현동 유택의 개보수가 마무리 단계이고 내년 봄에는 복합문화공간 ‘미당 서정주의 집’으로 공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소식을 전할 때는 목소리가 밝아졌다.

추모제에서는 김기택 시인이 미당의 시 ‘한국성사략(韓國星史略)’을, 김언 시인이 ‘단상’을 낭송했다. 재능시낭송협회 회원들이 ‘국화 옆에서’를 합송했고 남성5중창단이 시에 노래를 얹은 ‘국화 옆에서’와 ‘푸르른 날’을 노래했다. 2시간 남짓한 행사는 미당의 시로만 채워졌다. 시를 입으로 소리 내 따라 읽으면서 맛깔스러움을 되새기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홍기삼 이사장은 “미당의 황홀한 언어를 기억해 달라”고 참석자들에게 당부했다. 그의 시어가 품은 빛나는 마력을 시대의 곡절로 인해 제대로 향유하지 못해온, 행사장 밖 세상을 향한 부탁으로 들렸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