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촉도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 흰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리 .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히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드릴 걸 .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미당의 육신은 떠났지만 미당의 시는 살아 있습니다.” 21일 열린 미당 10주기 추모행사에서 문정희 시인이 추모사를 통해 시인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집 앞에 핀 후박나무 꽃을 돌아온 가족처럼 반겨 맞는 시인의 노래를 다시 들었다. 미당기념사업회의 주관으로 21일 서울 중구 예장동 ‘문학의집·서울’에서 열린 미당 서정주(1915∼2000) 10주기 추모행사에서다. 문태준 시인이 미당의 시편 ‘어느날 밤’을 낭송했다. 홍기삼 미당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전 이승의 언어를 놓아 버리고 눈으로만 말씀하셨을 때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먼저 간다. 잘들 있어라. 너무 힘들었다’고”라며 시인이 세상을 떠날 즈음을 회고했다. 문정희 시인은 “‘팔 할이 바람’(시 ‘자화상’),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시 ‘동천’)…. 미당의 시가 한국의 사방에 피어 있다는 생각을 지난 10년간 안 해 본 적이 없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추모제에서는 김기택 시인이 미당의 시 ‘한국성사략(韓國星史略)’을, 김언 시인이 ‘단상’을 낭송했다. 재능시낭송협회 회원들이 ‘국화 옆에서’를 합송했고 남성5중창단이 시에 노래를 얹은 ‘국화 옆에서’와 ‘푸르른 날’을 노래했다. 2시간 남짓한 행사는 미당의 시로만 채워졌다. 시를 입으로 소리 내 따라 읽으면서 맛깔스러움을 되새기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홍기삼 이사장은 “미당의 황홀한 언어를 기억해 달라”고 참석자들에게 당부했다. 그의 시어가 품은 빛나는 마력을 시대의 곡절로 인해 제대로 향유하지 못해온, 행사장 밖 세상을 향한 부탁으로 들렸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