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간 살해 위협에 비명… 석방후도 매일 악몽에 비명
틈만 나면 협박을 해댔다. 영어를 하는 해적 한 명이 통역을 했다. “한국은 미국처럼 잘살지 않느냐? 왜 빨리 너희들 목숨 값이 안 오냐? 빨리 돈을 부치라고 해라”며 머리에 총구를 들이댔다. 가슴 부위도 툭툭 찔렀다. 칼로 사람의 목을 베는 동영상도 보여줬다. “돈을 빨리 주지 않으면 너희들도 이렇게 될 것”이라며 험악한 인상을 썼다. 정말 그렇게 할 것 같아 겁이 났다. 해적들의 감시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선원들의 몸은 점점 굳어갔다.
○ 정신적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선원들
피랍 216일 만에 소말리아 해적에게 풀려난 삼호드림호 김성규 선장(56) 등 한국인 선원 5명이 겪었던 피랍생활의 극히 일부다. 구체적인 장면은 입에 담기도 싫다고 했다. 한 선원은 “만약 외부에 난 상처라면 수술로 봉합하면 되지만 7개월가량의 억류생활은 수술로도 회복하기 힘든 고통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치료 중인 1기사 임모 씨(35·이하 이름은 모두 익명)를 제외한 나머지 선원들은 부산 모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7개월간 제대로 먹지 못해 선원들은 귀국 당시 영양실조 상태였다. 장기간의 억류로 근육과 관절이 제 기능을 못해 매일 물리치료를 받는다. 며칠에 한 번씩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 5명 모두 불면, 초조, 극도의 불안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자다가도 ‘으악’ 하며 소스라치게 놀라 깬다. 기관장 김모 씨(62)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때 그곳 주민들은 포탄이 쏟아지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끔찍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라며 “우리는 해적들의 위협과 공포 속에서 7개월 넘게 그런 생활을 했다”고 회고했다. 선원들은 외부 노출을 꺼렸다. 김 선장은 “지금은 인터뷰할 상황이 아니다”고 거부했다. 김 선장은 20일 눈 수술을 받았다. 한 선원은 “정부나 선사에 정말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곧 선사인 삼호해운과 보상 협상을 할 계획이다.
○ 철조망에 해적보험 가입까지
국내의 한 해운사는 위험 항로인 아프리카 아덴 만을 운항할 때 액화천연가스(LNG)선과 탱커에 해적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날카로운 철조망을 둘렀다. 또 다른 해운사는 최근 선박에 물대포를 장착해 성능 실험을 하고 있다. 선박으로 올라오는 해적들에게 압력이 강한 물대포를 쏴 떨어뜨리는 방식. 모두 해적들을 막기 위한 자구책이다.
현대해상이 국내 처음으로 선보인 해적보험에도 가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창명해운, STX팬오션, 대한해운, 대림코퍼레이션 등이 이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대형 해운사는 선단(fleet) 단위로 국내외 해적보험에 가입했다. 일단 해적들에게 납치되면 선박 값과 선원 몸값으로 최소 100억 원 이상 지불해야 하는 등 손실이 크기 때문에 이런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영세업체들은 비용 부담 때문에 이런 자구책 마련에 머뭇거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 정부 “선원 피난처 설치 검토”
정부도 소말리아 해적 납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제도 마련에 나섰다. 정부 당국자는 22일 “선박에 보안요원을 태우거나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한 ‘선원 피난처’ 설치 등 자구책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통상부, 국방부, 국토해양부, 국가정보원 등 관계 부처는 최근 소말리아 해적피랍 재발방지대책회의를 열었다. 한 당국자는 “정부는 선박 자구책 마련 의무화를 위한 구체적인 법률이나 시행 지침을 1월까지 마련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동아논평 : 한국선박은 해적의 밥인가
▲2010년 11월8일 동아뉴스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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