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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국가대표 이어 고교부대회도 짬짜미

입력 | 2010-12-24 03:00:00

“가위 바위 보”로 1, 2, 3위 정했다




한국 쇼트트랙계의 고질적인 승부조작 행태가 다시 한 번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전 국가대표로 올림픽 금메달까지 딴 선수 출신 코치들이 국가대표 출전자격을 얻을 수 있는 전국대회에서 승부조작을 공모했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올 4월 국가대표 선발 승부조작으로 곽윤기 이정수 등 선수 2명이 징계를 받고 대한빙상경기연맹 집행부가 전원 사퇴한 이후 또다시 대규모 승부조작 비리가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3월 6, 7일 경기 성남탄천종합운동장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제5회 성남시장배 전국 중고 남녀 쇼트트랙·스피드 스케이팅대회’ 남자 고교부 쇼트트랙 경기에서 고3 선수들이 입상할 수 있도록 사전에 승부를 조작한 전 국가대표 이모 씨(45)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공모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모(32·현 국가대표 코치), 송모 씨(36) 등 개인코치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3일 밝혔다. 국가대표 코치 이 씨는 파문이 불거지자 이날 대한빙상경기연맹에 코치 사퇴서를 제출했다.

경찰에 따르면 초중고교 및 일반부 쇼트트랙 개인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대회를 한 달여 앞둔 올 2월 서울 송파구의 한 커피숍에 모여 입상경력이 부족한 고교 3학년 선수들을 입상시키기로 공모했다. 성남시장배 빙상대회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주관하는 국가대표 선발 예선전 중 하나로 이 대회에서 입상하면 일부 대학의 수시모집 체육특기자전형에 지원할 수 있다.

코치들의 승부조작 수법은 대담했다. 이 씨 등은 입상경력이 없는 고3 학생 11명을 고른 뒤 승부조작에 대한 비밀유지 각서를 작성하고 입상해야 할 선수들의 1, 2, 3위 순위를 ‘가위바위보’로 정했다. 코치들은 이런 식으로 순위가 정해진 선수들에게 “넌 2위니까 1등 선수 뒤에 붙어 돌면 나머지 아이들이 알아서 뒤로 빠져줄 것”이라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경기운영 지침까지 알려줬다. 또 실력이 좋은 고1, 2 학생들에게는 “편하게 타라”고 하거나 심지어 기권을 권유했다. 일부 학부모가 이 사실을 알고 반발하자 “(동의하지 않으면 아이를) 경기 도중 밀거나 넘어뜨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붙잡힌 코치들은 범행 일체를 시인하면서도 “쇼트트랙의 미래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강변했다. “국가대표가 욕심났던 것이 아니라 고3 선수들이 입상을 못해 대학 진학에 실패하면 장기적으로 선수층이 얇아질 것을 걱정했다”는 주장이다. 일부 쇼트트랙 코치는 범행을 주도한 이 씨 등을 선처해 달라는 탄원서를 경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곽윤기 이정수 선수 담합사건 이후 국가대표 선발 본선의 경우 각자의 기록을 겨루는 ‘타임 레이스’ 방식으로 바뀌었으나, 예선전과 그 외 다른 경기들은 여전히 순위를 겨루는 ‘오픈 레이스’로 진행하고 있어 담합과 조작이 쉽다”며 “승부조작에 대한 불감증이 일상화된 것으로 보이는 만큼 수사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