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사실까지 전면 부인하며 한국 측에 배상과 함께 책임자 처벌까지 요구하다 이틀 만에 갑자기 ‘소통’을 내세우며 공세에서 협상으로 다소 태도를 누그러뜨린 것은 무엇보다도 자국 어민의 불법행위를 뒤늦게 확인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 역시 이번 사건이 양국 어업협정의 파기로 이어지면 되레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서 중국 어선의 ‘싹쓸이 어획’이 더 늘어날 수 있어 ‘확전’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국 해경이 발표한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사실과 중국 어선의 전복은 도주하는 다른 중국 어선을 추격하는 한국 해경 경비함을 저지하려다 빚어진 사고라는 점, 중국 선원들이 흉기를 동원해 저항한 점 등에 대해서는 중국 외교부가 여전히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앞으로도 갈등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어쨌든 양국 정부가 갈등보다는 타협을 기조로 삼고 있어 일본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인근 해상에서의 일본 어선 나포와 선장 억류 사건처럼 양국 간 분쟁으로 비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중, 선박 충돌 사고에 대한 태도 누그러져
중국의 장위(姜瑜)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중국 어선 침몰사건에 대해 한국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 “한국이 여러 차례 유감을 표하고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의사를 밝혀 이를 주시하고 있으며 한국 측과 소통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한국 측에 요구했던 사상자 보상 및 사고 책임자 문책을 철회하지는 않았지만 협상을 우선시하려는 분위기가 읽힌다.
장 대변인은 21일 브리핑에서는 “어떤 해역에서든 어선에 충돌해 인명 피해를 내면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하며 중국 어선이 한국 경비함을 들이받았다는 한국 정부의 조사 결과와 반대 주장을 폈다. 또 장 대변인은 “양국의 어업협정에 따르면 양국 어선은 모두 이 (사고) 해역에 들어갈 수 있고 양국은 각자 자국 어선에 대한 법 집행만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주장해 사고 어선이 한국의 EEZ에 들어와 불법조업한 사실도 부인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중국 어선의 불법어로 행위에서 빚어진 것에 비추어 보면 장 대변인이 마치 한국이 유감을 표하고 협상 의사를 밝혀 대화에 나서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주객이 전도된 오만한 태도라는 지적도 있다.
○ 中 어민 불법 확인…확전 손해 판단한 듯
중국 측의 태도 변화는 또 당시 장면을 담은 비디오 화면과 한국 측이 구조해 조사를 벌인 선원 3명 등의 진술로 중국 어민들의 불법성이 드러났고 이에 대해 중국 당국도 일부분 수긍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 일본과의 갈등 과정에서 자국 어선 선장 석방을 위해 희토류 수출 제한까지 동원한 것에 대해 ‘강공 외교’라는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은 것도 이번 사건 처리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과 달리 이번 사건은 분쟁 수역도 아닌 곳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자국 어민 보호라는 실리만을 내세울 경우 다시 한 번 주변국에 완력을 행사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중국 정부는 자국민 보호에 최선을 다한다는 ‘내부용 목소리 높이기’와 함께 원만하게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외교적 협상 노력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 한국, 정당한 단속에도 왜 소극적 대응?
불법조업에 나선 중국 어선에 대한 한국 해경의 단속이 정당했고 국제법상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우리 정부가 오히려 저자세로 대응하는 것처럼 비치는 데 대해 2001년 체결한 한중어업협정의 ‘자동파기 조항’을 의식한 때문이란 분석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한중어업협정이 체결되면서 양국은 서로의 EEZ를 인정하고 잠정조치수역에서의 조업 제한 및 어족자원 보호 등을 공동 관리하고 있다. 한국으로선 이 협정 체결 이후 중국 EEZ에 비해 어족자원이 풍부한 우리 EEZ에서 중국 어선의 조업을 효율적으로 차단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협정을 체결한 지 5년이 지나면 언제라도 1년 전에 서면으로 통보해 협정을 종료할 수 있다’고 규정한 협정 16조 3항. 한국이나 중국이 먼저 협정을 파기하겠다고 통보하면 자동 폐기된다는 얘기다. 이 협정이 폐기되면 한국과 중국의 EEZ가 겹치는 우리 EEZ 내에서는 중국 어선의 싹쓸이 조업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외교부 관계자는 “한중어업협정은 양측이 어렵게 합의해 만든 것으로 상호이익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며 “중국 측도 어업협정 자체까지 문제 삼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