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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성낙인]플리바기닝이 면죄부가 된다면

입력 | 2010-12-24 03:00:00


범죄는 날로 지능화한다. 검경도 과학적 수사기법으로 이에 대응하지만 뛰는 수사기관이 나는 범인을 잡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부패사범이나 조직범죄 같은 경우 당사자 사이에 매우 은밀하게 진행되므로 제3자인 수사기관이 범죄의 전모를 밝히는 일은 어렵게 마련이다.

진실 밝힐 수사 효율성도 좋지만

예컨대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에 연루된 다수의 고위공직자가 기소돼 재판을 받았지만 박연차 씨의 진술 외에는 제대로 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일부 공직자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최근에는 한명숙 전 총리에게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건설업자가 검찰에서의 진술을 번복하고 법정에서 금품 수수를 부인해 재판의 귀추가 주목된다.

검찰은 공익의 대변자로서 사회적 거악을 척결해야 할 책무를 갖는 최고의 사정기관이다. 검찰 수사의 효율성과 실체적 진실 발견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법무부는 피의자가 수사에 협조해 범죄 규명에 기여할 경우 정도에 따라 죄를 묻지 않는 ‘사법협조자 소추면제’와 형벌 감면 혜택을 주는 제도를 도입하는 형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를 일반적으로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 제도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영미법계의 면책조건부 증언취득제와 독일 프랑스 같은 대륙법계의 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로 나뉜다. 입법예고 내용은 대륙법계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유엔협약에서도 도입된 제도를 한국적 현실에 적용하자는 데 공감할 수 있지만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검찰의 존재 이유는 형사사법적 정의 실현에 있다. 검찰이 범죄 혐의자와 협상을 하고 말을 잘 들으면 처벌을 감면해 주는 일은 국민의 법감정에 용납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예컨대 뇌물 제공자는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공직자를 매수한, 이를테면 부패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이다. 그런데 뇌물 제공 사실을 검찰에서 진술했다고 해서 형을 감면받으면 죄 있는 자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으로 민주법치국가의 형사사법 정의에 어긋난다. 그 점 때문에 새 제도의 도입 이전에 국민적 신뢰를 담보하기 위해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

둘째, 검찰의 내사자 내지 피의자의 신분이 되면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공황상태에 빠지게 마련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라는 표현처럼 누구나 범죄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 이들의 곤궁한 상황을 이용한 자백은 실제로는 자의에 의한 자백이 아니라 강요된 자백이 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자칫 재판 과정에서 자백의 증거능력이 부인당할 수도 있다.

셋째, 검찰의 재량권이 남용될 수 있다. 특히 사법협조자에 대한 공소불제기는 기소독점주의를 채택하는 현행법상 사법협조자는 법원의 재판을 받지도 않게 된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한 재판을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검찰이 수사편의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새 제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검찰은 형사사법의 기본에 충실한 수사를 해야 하고 사법협조자를 통한 수사는 예외적인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

마약범죄 등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검찰은 한편으로 수사를 통해 사회적 거악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국가적 과제를 안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선량한 시민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법언에 비춰 보면 수사 과정에서 국민의 인권보호가 절실하다. 인권을 보호하는 가운데 범죄혐의의 실체적 진실 발견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럴수록 수사의 정도(正道)를 가야 한다. 입법예고처럼 부패범죄와 조직 테러 마약범죄 같은 특정 범죄에 한해 제한적으로 작동하겠지만 그 경우에도 불가피한 경우에 한정해야 한다.

성낙인 서울대 헌법학교수 한국법학교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