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가 어떻게… 사기꾼 취급 당했지만 열정 하나로 아프리카서 노다지 캤죠”
《 17일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중소기업 코코엔터프라이즈가 ‘계열사인 C&K마이닝이 카메룬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을 따냈다’는 공시를 하자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일부 투자자는 열광했지만 많은 사람은 ‘사기 기업이 또 하나 나온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보물선 탐사, 유전사업 등 각종 탐사 및 발굴과 관련된 기업들의 공시가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끝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덕균 코코엔터프라이즈 회장은 진즉부터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듯하다. 여러 번의 인터뷰 요청 끝에 만난 그는 “나에게 불리한 질문부터 해달라. 그래야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의 의혹을 해소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꿈을 좇아 2005년 아프리카 카메룬으로 떠난 이후 오 회장이 만난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사기꾼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
○ 두 차례 실패 끝에 찾아온 기회
오덕균 회장은 지금도 사무실 책상에 자신이 개발했던 빨간 머그컵을 둔다. 길이 안 보일 때마다 이 컵을 보며 스스로의 질긴 생명력에 대한 확신을 얻는다고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자원빈국 한국에서 중소기업이 일을 냈다. 직원 70명, 자본금 30억 원 규모의 작은 회사인 C&K마이닝이 5년에 걸친 탐사작업 끝에 세계 최대 규모의 다이아몬드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아프리카 카메룬 요카두마 지역의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을 따냈다. 25년간 개발권을 갖지만 그 이후에도 필요할 경우 10년 단위로 연장할 수 있는 사실상 영구적 개념의 개발권이다. 탐사조사 결과 이 지역에 매장된 다이아몬드는 최소 4억2000만 캐럿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량이 1억4000만 캐럿이므로 세계 연소비량의 최소 3배가량을 발굴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오 회장이 처음부터 자원개발에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었다. 1966년생인 그는 청주대 정치외교학과를 1988년에 졸업하고 해광세라믹이라는 도자기회사를 운영했다.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지방대 출신이 취직하기는 세상이 만만치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연히 도자기공장을 방문하게 됐고 흙을 만지며 생활하는 게 좋아보여서 부모로부터 자금을 빌려 공장을 인수했다. 도자기의 ‘도’자도 몰랐어도 한때 직원이 100명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시켰지만 1993년 어음을 잘못 받아 부도가 났다. 그 후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빨간색 도자기는 커피 및 음료회사에서 수요가 많다’는 말을 듣고 빨간 도자기 개발로 3, 4년을 보냈다. 개발에 성공해 사업을 재건했지만 1999년 말 이번엔 폐수배출 문제로 공장 문을 닫아야 했다.
오 회장에게 기회가 온 것은 2005년 중반이었다. 중국 사업을 구상하며 소일하던 중 아프리카에 광권(鑛權)을 갖고 있다는 한 사업가를 만났다. 그때까지 마련해 둔 돈을 들고 아프리카 카메룬에 도착했지만 일확천금의 꿈은 바로 깨졌다. 광권은 광산을 개발해 바로 산업화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해당 지역을 적어도 3년간 탐사해 매장량을 확인하는 탐사권일 뿐이었다. 사업 파트너와 헤어지고도 오 회장은 한국으로 올 수 없었다. 모든 것을 걸었기에 뭐라도 해야 했다.
○ 카메룬 현지화 전략 주효
오덕균 코코엔터프라이즈 회장(왼쪽)과 고 김원사 충남대 교수(왼쪽에서 세 번째)가2007년 카메룬 요카두마 지역에서 현지 지질학자들과 함께 다이아몬드 광산 탐사 활동을 벌인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제공 코코엔터프라이즈
천연자원의 보고(寶庫)인 카메룬 정부는 당시 다이아몬드 사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1980년대부터 동쪽은 유엔개발계획(UNDP)이, 서쪽은 프랑스의 탐사팀이 카메룬 정부와 공동으로 지질탐사를 벌여왔지만 1990년대 중반 카메룬 정부의 재정난으로 탐사사업이 중단됐다. UNDP는 요카두마 지역의 지질탐사를 95%가량 진행한 상태였다. 세계 7개국 10여 개 업체가 이 소식을 듣고 관심을 보였고 한 회사가 다이아몬드 개발권에 대해 구두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회사가 주민 불화 등으로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사업권은 C&K마이닝으로 넘어왔다. 소규모 사금채취사업이었지만 주민 갈등을 잘 봉합하고 지역사회에 이익을 환원하며 성실하게 사업을 이끄는 것을 눈여겨봤던 카메룬 정부의 선물이었다.
▼ “새 길 개척 사명감… ‘드비어스’ 같은 세계적 브랜드 키울 계획” ▼
탐사작업을 위해 전문가를 수소문했다. 처음 한국 정부에 도움을 청하자 “국가가 개인에게도 허가권을 주느냐”고 물으며 사기꾼 취급을 했다. 한국에서 광물학, 보석학, 지질학을 두루 거친 몇 안 되는 학자 중 지금은 고인이 된 충남대 김원사 교수를 찾아냈다. 김 교수도 처음엔 의심의 시선을 보냈다. 일단 현장에 가보고 맞으면 도와달라며 김 교수를 혼자 카메룬으로 보냈다. 현장을 확인하고 돌아온 김 교수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오 회장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오 회장은 “처음에는 2, 3년만 투자하면 탐사는 끝날 줄 알았다”며 “이렇게 5년이나 걸리는 일인 줄 알았다면 그때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오 회장은 사금채취사업으로 번 돈을 다이아몬드 탐사에 바쳤다. 오 회장과 김 교수가 묵었던 카메룬 현지 호텔은 투숙객에게 흙탕물 한 바가지를 주며 ‘씻을 물’이라고 했다. 비위가 약했던 오 회장과 달리 김 교수는 그 물로 칫솔질까지 했다. 말라리아에 걸리기도 몇 차례였다. 비위생적인 현지 음식을 먹지 못했던 오 회장은 밀림 속 탐사 현장까지 가는 4일 내내 탄산음료로 버티기도 했다. 직원들에게 배달할 한국 밑반찬을 멘 어깨에는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3일에 걸친 비행 끝에 카메룬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면 일주일간 탈진해 누워있었고 4∼5kg씩 몸무게가 빠졌다.
무엇보다 지질탐사의 책임을 지고 있던 김 교수가 2008년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사업은 큰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지질탐사작업은 거의 끝난 상태였지만 오 회장의 눈과 귀가 돼줬던 김 교수의 사망은 심리적으로 큰 타격이었다.
탐사작업이 끝나고도 성공 여부는 100% 확신하기 어려웠다. 올 7월 카메룬 정부 8개 부처 16명이 참가하는 개발권 협약서에 서명했지만 폴 비야 카메룬 대통령의 최종 서명을 받아야만 사업 진행이 가능했다. 결국 17일 대통령이 최종 서명하면서 아시아 첫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의 꿈은 첫발을 내디뎠다.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지금 추정하는 것만큼 많은 다이아몬드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괜찮다”고 했다. 성공스토리는 이제 도입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 회장은 다이아몬드 원석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해 인수한 코코엔터프라이즈와 다이아몬드 가공 유통업체인 딕스를 통해 ‘오보코’라는 새 브랜드를 시작해 ‘드비어스’와 같은 세계적 명성의 브랜드로 키울 꿈에 부풀어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에너지 자원 외교를 강화하려는 정부도 환영하고 있다. 김은석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대사는 “최근 카메룬 대통령이 개발권에 최종 서명해 민간기업인 C&K마이닝이 개발권을 따낸 건 아프리카에 대한 자원외교를 강화하겠다는 정부 입장에서 보면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