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산타클로스는 정신없이 바빴을 것이다.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하룻밤 안에 선물을 날라 주는 일은 분명 불가능한 과업임에 틀림없다. 예전에 정재승 KAIST 교수가 산타클로스의 배송속도를 계산한 적이 있다. 선물을 받을 만한 지구촌 착한 어린이를 4억 명쯤으로 잡고 이를 가정 수로 환산하면 1억6000만 가구 정도. 지구가 도는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면 하룻밤이라도 31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 산타클로스는 1초에 1434가구를 들러야 한다는 셈법이었다. 집과 집 사이를 이동할 때 초속 1434km로 달려야 한다는 말이다. 음속의 4000배가 넘는다고 하니 바쁘다는 말로는 어림하기 어려운 빠르기다.
이런 산타클로스도 한국을 찾을 때는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는 아파트단지가 많아 이집 저집 들를 때의 시간낭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현재 한국의 주택 중 아파트 비율은 52.7%로 집 두 채 중 한 채가 아파트였다. 2년 뒤인 2007년에는 전국 아파트 수가 26만 채 더 늘었다. 여기에 주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오피스텔 등을 포함하면 규격화된 집에 사는 인구수는 부쩍 증가한다. 올해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가 나오면 최신 아파트 비율을 알게 될 것이다.
수치로 보여주지 않더라도 이제 아파트는 ‘국가 대표주택’의 지위에 올라섰다. 아파트 거주자 역시 평균 이상의 계층으로 한데 묶을 만하다. 한국이 아파트로 단일화, 평준화를 이룬 셈이다. 게다가 아파트 생활은 유목민과도 같다.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겠다는 생각에 ‘지금, 여기’는 오래 머물 곳이 아니다. 이웃, 정겨움, 공동체와 같은 요소는 기억 저편에서나 가물거릴 뿐이다.
일본에는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가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우리말로 ‘마을 만들기’ 또는 ‘마을 가꾸기’에 해당하는 마치즈쿠리는 공해반대운동으로 시작해 지금은 인구감소 시대에 맞는 도시계획의 뜻까지 내포한다. 고밀도, 고층화를 따라가지 않고 마을을 주민들의 힘으로 좀 더 살기 좋게 만드는 자발적인 활동이다. 서울에도 서울시가 지원하는 ‘휴먼타운’ 시범사업이 성북동, 인수동, 암사동 3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 밑바탕에는 우리 마을을 모두 헐고 아파트로 바꾸는 대신 우리 손으로 더 좋게 만든다는 연대 의지가 숨쉰다. 우리 삶의 터전에서 뿌리 뽑히지 않고 계속 살겠다는 의식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이진 경제부 차장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