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공백에 고교 인조구장 전전하며 훈련 “수원과 8강 대혈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
신태용 감독, 스포츠동아DB
성남 일화 신태용(40) 감독은 우승과 참 인연이 많다. 프로생활 13년 동안 6차례 K리그 정상에 섰다. 컵 대회나 FA컵, 아시아클럽대항전까지 합치면 우승 트로피만 10개가 넘는다. 뿐만 아니다. 창단하는 팀마다 처녀우승을 시켰다. 대구공고 창단 첫 우승, 영남대학교 창단 첫 우승의 주역이었다. 성남도 그가 1992년 입단한 이듬해인 1993년 창단 후 처음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정말 우승 복이 터진 사나이다. 그래서일까. 한 번도 우승 후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예전에는 솔직히 우리 팀이 마음만 먹으면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맺힌 적은 몇 번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운적은 없다.”
○서러움 복받쳐 올라 대성통곡
그는 올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주저 없이 아시아 챔스리그 우승을 꼽았다. 사실 “우승 하겠다”고 큰 소리는 쳤지만 내심 8강을 목표로 했다. 무리가 아니었다. 성남은 결코 우승 전력이 아니었다.
2009년 신 감독 부임 후 주축 선수들이 차례로 빠져나갔다. 특히 올 여름 계약이 끝난 브라질 외국인 선수 파브리시오를 잡지 못한 것과 장학영의 군 입대는 치명타였다. 그는 “장학영과 파브리시오가 나갔을 때는 정말 아무 의욕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성남은 승승장구했다. 특히 챔스리그 8강에서 수원 삼성을 꺾더니 4강 알 샤밥(사우디), 결승에서 조바한을 차례로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신 감독은 “우승해도 안 울겠다고 몇 번 다짐했다. 그런데 (박규남) 사장님이 덥석 안으며 ‘신 감독 마음껏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라고 말하는 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잔디 보수문제로 명색이 프로팀이 풍생고 인조구장을 전전하며 훈련했던 일이나 여름에 마음에 쏙 드는 외국인 선수가 있어 구단에 영입을 요청하니 돈 6000만원이 없어 거절당했던 일들이 갑자기 스쳐가며 서러움이 복받쳤다”고 말했다.
우승하기까지 최대 고비로는 수원과의 8강전을 들었다. 자존심이 걸린 승부였다. 성남과 수원은 9월 1일 정규리그를 시작으로 9월 15일 8강 1차전, 22일 8강 2차전 등 9월 한 달에만 3차례 맞대결을 벌였다. 9월 1일에는 0-0으로 비겼고 9월 15일에는 성남이 홈에서 예상 밖 4-1 완승을 거뒀다. 2차전에서 2골 차로만 져도 4강에 오르는 유리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 때부터 신 감독 입술이 바짝 바짝 탔다.
당시 신 감독은 수원 윤성효 감독과 누더기 잔디와 뻥 축구로 언론을 통해 한참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한 그였기에 더욱 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2차전은 생각과 다른 양상으로 흘렀다. 수원이 전반 30분 염기훈, 후반 13분 이상호의 골로 2-0 앞서 나갔다. 1골만 더 내주면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성남이 탈락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러나 결국 더 이상의 실점은 없었고 성남은 가까스로 4강 티켓을 손에 쥐었다.
신 감독은 “그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우리 우승의 최대 난관 이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시아 무대 평정이라는 큰 업적을 남겼지만 올해 아쉬운 순간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K리그 준플레이오프(PO)에서 전북 현대에 0-1로 패해 내년 시즌 챔스리그 티켓을 놓친 게 가장 뼈아프다. “디펜딩챔피언이 다음 대회에 못 나가다니. 내년에 또 한 번 멋지게 사고치고 싶었는데….”
그는 못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선수들에게는 고마울 따름이다.
“전북과의 준PO를 벤치에서 보는 데 녀석들이 이기려고 사력을 다하는 게 보였다. 근데 안 됐다. 지쳐서 몸이 안 따라가 주더라. 정말 가슴이 아팠다. 경기 끝나고 선수들 모두에서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그들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 나머지는 뒷받침해주지 못한 나와 구단의 책임이다.”
신 감독의 눈에 잠시 또 이슬이 맺혔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