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과 다른 절차가 마찰 불러
2010년 12월 24일 역시 한국 원자력 역사 속에서 도드라지는 숫자다. 건설 중인 경주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1000드럼이 처음으로 반입된 날이다. 1978년 고리 원전이 처음 가동된 이래 32년, 1984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대한 첫 논의가 이루어진 지 26년, 2005년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경주에 짓기로 결정하고 5년 만이다. 발전량의 40% 이상을 원자력발전에 의지하면서도 방폐장 하나를 갖지 못해 애면글면한 시간과 그 과정에서 지불한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생각한다면 기념할 만하다.
그런데 축하가 아닌 반대의 현수막이, 박수가 아닌 성난 목소리가 조심스레 환영을 대신했다. 일부 경주시민은 저장시설이 아닌 인수처리시설로의 반입에 안전성 문제를 제기했다. 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은 방사선 누출차단 설비를 갖추고 있어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혹자는 경주시민의 시위는 지원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말한다. 경주시민 50여 명이 “경주시민의 허락 없는 방폐물 반입은 절대 안 된다”며 30년 만의 한파 속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인 까닭은 무엇일까. 안전성 때문도 지원 때문도 아닐 수 있다. 핵심은 소통이다.
방폐물 문제는 안전성 확보를 바탕으로 소통을 통해 신뢰를 쌓는 것이 관건이라는 말은 수년간 지속돼 온 당위적 주장이다. 이제 주장이 아니라 실천이 필요하다. 방사성폐기물에서 발생하는 공학적 사회적 경제적 위협을 넘어설 수 있는 구조와 전문가 및 일반시민을 포함한 이해관계자가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 즉 ‘원자력 거버넌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선의 합의를 만드는 연습 가져야
원자력 거버넌스로 얻고자 하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만이 아니다. 최적이 아닌 최선의 정책 결정과 성공적 추진이 목표다. 오케스트라 지휘를, 악기 연주를 책이나 강의로 배울 수는 없다. 연습을 해야 한다. 원자력 거버넌스도 마찬가지다. 궁리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연구 결과와 경험, 그리고 판단력에 의지를 더하면 실천이 어렵지 않다. 실천 과정에서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할 수도 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실천적 지혜를 찾을 수도 있다. 연습이 거듭되면서 전자는 줄고 후자는 늘 것이다.
원자력의 날이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10년, 100년, 아니 방사성폐기물의 관리기간이 끝날 때까지 뜻깊은 기념일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오늘 이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조성경 명지대 교수 에너지 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