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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노송동 주민센터에 올해도 ‘얼굴없는 기부’

입력 | 2010-12-29 03:00:00

11년째 몰래 두고 간 천사




“매년 성의 표시하는 게 있는데. 동사무소 앞 미장원 골목에 상자가 있으니 가 보세요.”

28일 오전 11시 55분경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 40대 후반 정도로 추정되는 남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은 주민센터 직원 심야은 씨(27·여)는 곧바로 ‘그분’임을 직감했다. 주민센터 직원들이 단걸음에 골목으로 달려가 보니 빈 화분 위에 A4 용지를 담는 종이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주변을 지나는 행인이나 움직이는 차량도 발견하지 못했다. 종이상자에는 고무줄로 묶은 5만 원권 100장 묶음 7다발(3500만 원)과 500원, 100원, 50원, 10원짜리 동전이 든 돼지저금통(84만900원) 등 총 3584만900원이 들어 있었다.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2000년 4월 처음으로 이곳에 성금을 놓고 간 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1년째다. 2002년에는 어린이날 전날을 포함해 두 차례 다녀가 횟수로는 열두 번째. 지금까지 기부한 돈은 모두 1억9720만4020원.

2000년 첫해 58만4000원에서 지난해 8026만 원까지 액수는 매년 달랐지만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노송동주민센터 주변이나 성탄절을 전후한 시기는 같았다. 한일수 노송동장은 “성금을 전달한 시점과 방식, 전화 목소리 등으로 미루어 바로 그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잊지 않고 찾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과거 9년간 성금액인 8100여만 원과 맞먹는 8026만 원을 한꺼번에 내놓았다. 성금 전달의 배경을 가늠해볼 수 있는 쪽지도 남겼다. 그 쪽지에는 “모든 어머니처럼 저희 어머니께서 안 쓰고 아끼시며 모은 돈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였으면 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수년 전부터 이맘때쯤 방송사 카메라가 며칠씩 잠복하기도 했지만 천사의 신원은 드러나지 않았다. 전주시는 익명을 원하는 기부자의 뜻을 살려 신원을 추적하지 않기로 했다.

전주시는 그동안 성금을 어려운 가정에 가구당 10만∼30만 원씩 나눠주거나 쌀과 기름 등 생필품으로 지원해 왔다. 또 지난해 노송동주민센터 주변 도로를 ‘얼굴 없는 천사도로’로 이름 짓고 올 1월 12일에는 천사가 성금을 놓고 가던 주민센터 화단에 기념비도 세웠다.

전주=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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