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오랜만에 ‘유산’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에 한국을 방문한 영국 카본트러스트사의 데이비드 빈센트 박사 때문이다. 기업의 온실가스 저감과 관련한 연구를 지원하는 전문기관인 카본트러스트의 창립멤버인 빈센트 박사는 방문하는 곳마다 유리창과 건물구조를 살펴보았다. 그는 “한국의 거의 모든 건물, 특히 신축된 고층건물들이 한국의 미래 세대에 큰 부담이 되는 ‘유산’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위용을 자랑했던 63빌딩을 소개할 때 전력소모량이 경기 의정부시 전체의 전력소모량과 같다는 통계자료를 인용한 것처럼 고층건물은 막대한 전력과 연료를 사용한다. 냉방에 필요한 전력 생산 비용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 난방을 위해 필요한 연료 비용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기후변화와 열섬현상의 심화로 냉방수요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 고층건물을 인간이 사용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유산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 하지만 관리가 어려운 유산은 큰 부담이 된다. 우리는 이미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대변화라는 파괴적인 유산을 만들어내 후세대에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한 ‘건물’이라는 또 다른 악성 유산을 남기지 않도록 개선의 노력이 절실하다.
김지석 주한 영국대사관 선임기후변화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