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다’로 만나 6년만에 ‘아이다’로 재회…뮤지컬계의 두 여장부 박칼린&옥주현
뮤지컬계의 ‘절친’으로 소문난 박칼린 감독(왼쪽)과 옥주현. 두 사람은 6년 전 뮤지컬 ‘아이다’ 오디션장에서 첫 인연을 맺은 이래 사제이자 자매, 동료, 친구로서 따뜻한 우정을 쌓아 가고 있다.
두 사람은 닮았다.
사람들을 압도하는,
일할 때의 카리스마가 똑같다.
반대로 일터를 떠나면
더 없이 다정하고
살갑다는 점도 그렇다.
후배를 챙기며
음식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사람들에게 주는 것을
더 더욱 좋아한다.
뮤지컬계의 여장부 박칼린(44)과 옥주현(31). 6년 전 뮤지컬 ‘아이다’의 오디션장에서 음악감독과 배우 지망생으로 만나 지금까지 사제지간, 동료, 자매, 친구로 우정을 나누고 있다. 하루를 48시간으로 쪼개 사는 이들을 동시에 만나 신년맞이 토크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박칼린 감독은 평소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악명(?)이 자자한 사람. 한 달 여에 가까운 끈질긴 요청과 기다림 끝에 결국 두 사람을 스포츠동아 신년 인터뷰 장소에 초대할 수 있었다. 아니, 그들을 만나러 찾아갔다. 뮤지컬 ‘아이다’ 공연이 열리고 있는 성남시 야탑동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아기 주먹만한 눈으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으니 가슴이 옥죄어지는 것 같다. 두 사람은 각각 배우와 스태프로 뮤지컬 ‘아이다’에 참여 중이다. 옥주현은 여주인공 ‘아이다’를, 박칼린은 국내 협력 연출을 맡았다.
● 뮤지컬 ‘아이다’와 그녀들
‘아이다’역 지망생과 음악감독으로 만남
“옥주현, 대본 파악 능력 훨씬 깊어졌다”
“아이다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무척 뜨거운 것 같다”고 하자 박칼린 감독이 웃었다.
옥주현(이하 옥) “반응이 좋아 다행이에요. 여전히 긴장되고, 무대에서 실수라도 한 날은 죽고 싶을 만큼 힘들죠. 관객은 두 번 보러 오시는 게 아니니까. 게다가 개막하고 2주차까지 코감기에 걸려 고생했어요. 맹맹한 소리 때문에 대사를 하는데 자꾸 받침에 ‘ㅇ’소리가 났죠.”
두 사람의 첫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는 이미 꽤 많이 알려졌다. 6년 전 ‘아이다’ 한국 초연 오디션. 당시 박칼린은 음악감독으로, 옥주현은 ‘아이다’역 지망생으로 만났다.
박칼린 앞에서 옥주현은 지정곡이었던 ‘아이다’의 ‘삶처럼 쉽죠(Easy as Life)’를 불렀다. 박칼린은 그가 국민요정으로 통하는 아이돌 걸그룹 ‘핑클’의 멤버인지도 몰랐지만, 노래 한 곡 듣고 옥주현을 덜컥 캐스팅했다.
이를 두고 “‘주연’인줄 알고 뽑았는데, 알고 보니 ‘주현’이었네”란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 옥주현이 “어우∼ 뭐예요!”하고 눈을 흘긴다.
박칼린 “모든 캐스팅 인격을 보고 결정”
옥주현 “배경보다 실력으로 평가 원해”
# ‘아이다’로 시작된 인연, ‘아이다’로 재회하다
‘아이다’로 만나 6년 만에 ‘아이다’로 재회한 두 사람. 뭐가 달라졌을까.
박: “주현이의 경우 연기력이죠. 그리고 대본을 파악하는 능력. 예전에는 ‘대본에 있어서 해야 하니까 했다’였다면 지금은 ‘이게 과연 이 뜻? 그렇다면 난 이렇게 표현해 보겠다’라는 게 나오죠. 훨씬 깊은 레벨에서의 생각이 가능해진 겁니다.”
옥: “여전히 ‘만족한다’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고요. 다만 무대 위에 있을 때, ‘아, 아이다가 이때는 이런 심경이었겠구나’싶을 때가 많아졌죠. ‘왜 아이다가 이 순간 라다메스와 찌릿했을까’하는 것도 이해가 가죠. 6년 전에는 이 장면이 저에게 굉장히 무서웠어요. 틀리지만 말고, 빨리 끝내버렸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죠.”
박칼린 감독은 2010년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남자 그리고 하모니)’편에서 합창단을 이끌며 보여 준 따뜻한 카리스마 덕에 국민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이후 쇼 프로그램 진행, CF 출연 등 본업인 뮤지컬 외에도 다양한 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대중의 시선이 전과는 달리 강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개인적인 삶’을 사랑하는 그로선 정말 곤혹스러울 법도 하겠다.
(실제로 성남 아트센터 오페라 하우스에서 인터뷰를 하던 도중에도 박칼린 감독을 알아 본 팬들이 들이닥쳐 사인을 부탁하기도 했다.)
박: “뭐, 다 그런 거죠. 동양적 사고로 볼 때 좋은 게 생기면, 나쁜 것도 딱 그만큼 생겨서 균형을 이룬다고나 할까. (유명해지니) 좋은 것도 무척 많고, 불편한 것도 많아요. 그렇다고 해서 생활이 달라지지는 않아요. 일도 마찬가지. 제가 하던 것에서 아무 것도 달라진 건 없어요.”
옥: “선생님이 한 번은 제게 이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넌 어떻게 10년이 넘도록 이러면서 살았니’라고요. 아하하!”
박칼린 감독은 최근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담은 에세이집 ‘그냥’을 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새로운 직함을 얻었다. 에세이 내용 중에는 평소 가까운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함께 일하고 싶은 ‘행운’의 배우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박: “해보고 싶은 사람과는 대충 다 해본 것 같아요. 조승우와는 ‘라스트파이브이어스’를 해보고 싶어요. ‘이 작품은 뭘까’하고 함께 대화를 하던 때가 있었죠. (최)재림이는 나중에 나이가 좀 들어서 ‘팬텀(오페라의 유령 주인공)’을 하면 무척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 키에, 귀신 손가락에 … 아무튼 괴기에 능한 애라서. (정)선아는 ‘렌트’의 ‘미미’를 다시 보고 싶고. ‘남격’에서 만난 신보라는 ‘렌트’의 ‘모린’ 역이 잘 어울릴 듯해요.”
● 2011년 재미있는 ‘꿍꿍이?’
오케스트라 +음악+ 박칼린의 만남
라스베이거스같은 ‘대형 쇼’도 구상
# ‘배우’가 아닌 ‘사람’을 보고 캐스팅
박칼린 감독은 조승우(명성황후 고종), 옥주현(아이다)을 연예 스타라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캐스팅했다. 이들은 이제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스타배우로 우뚝 섰다. 그에게는 뭔가 배우를 보는 눈이 남다른 시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린의 눈’이라고 해도 좋겠다.
박: “‘사람’이 중요합니다. 모든 게 인격과 물려있어요. 사람을 보면 역량이 보입니다. 이∼만큼 할 수 있는데, 요것밖에 안 하면 쓸 데가 없죠. 반대로 요만큼 밖에 못하는데 노력해서 이만큼 더 하고 있구나 싶으면 씁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초창기 뮤지컬계의 일부 사람들에게 옥주현은 아직도 ‘연예인 출신 배우’, ‘굴러온 돌’의 이미지가 남아 있었다. “속상하지 않냐”라고 물으니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느냐”라는 답이 돌아왔다.
옥: “‘출발기준이 넌 연예인이니까’라는 것 자체는 섭섭하기도 해요. 사실 저도 마찬가지에요. 예전에 가수 출신이 아닌 연예인이 앨범을 내고,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면 우리도 비슷한 기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정말 실력이 있고, 잘 어울린다면 굳이 돌을 던질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요. 지금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뮤지컬을 알리는 게 저희들(연예인 출신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듣고 있던 박칼린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와 함께 일한 배우들의 경우 평가가 극과 극으로 정확히 나뉜다.
박: “일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힘들 게 하죠. 똑바로 해내야 하니까. 배우 한 두 명이 아니라 아예 전체를 힘들게 했던 시절도 있고, 정말 편하게 해 준 시절도 있어요. 어떤 팀의 특정한 사람을 힘들게 한 일도 있죠. 모두 일에 대한 겁니다. 그런데 간혹 그걸 개인적으로 날아온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극과 극으로 나뉘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옥: “어느 분야나 똑같은 것 같아요. 제 스타일리스트는 참 오래 함께 일했거든요. 주변에서 ‘옥주현 까다롭다는데 괜찮냐’라고 한대요. 그럴 때마다 ‘난 세상에서 제일 편한 게 옥주현이다’라고 말한대요. 저와 잘 맞으니까요. 시각의 차이겠죠.”
박칼린 감독은 뭔가 큰 짐을 덜어내고 나면 자신의 ‘사단’을 이끌고 홀가분하게 여행을 떠나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계획도 없이 지도 한 장 들고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다. 구름처럼 떠돈다고 해서 ‘구름 투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얘기를 꺼내자 박칼린 감독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박: “올해도 가야죠. 지금 대략 꾸미고 있어요.”
옥: “시간 없으시다면서요? 언제 가실 건데요?”
박: “으응 … 그게 그러니까 … 11월쯤. 아직 많이 남았어 ….”
두 사람은 2011년 재미있는 꿍꿍이(?)를 갖고 있다.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와 진짜 좋은 음악 위에 박칼린만의 개성을 입힌 ‘박칼린표’ 뮤지컬 갈라 콘서트를 개최하는 일이다. 물론 옥주현도 함께 한다.
박칼린 감독은 뮤지컬이 아닌 미국 라스베이거스 쇼와 같은 대형 쇼도 구상 중이다. 이미 1년 반 전부터 대본을 써 놨다.
인터뷰를 마친 뒤 박칼린 감독은 제야 음악회 오케스트라 연습을 위해, 옥주현은 ‘아이다’ 공연을 위해 부랴부랴 제 위치로 돌아갔다.
인터뷰라기 보다는 한 바탕 수다를 떨고 난 기분이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뮤지컬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란 인사를 독자 여러분께 전해 드린다. 한 편의 해피엔딩 뮤지컬같은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란다.
● 박칼린은?
1967년 미국 LA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 경남여고를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예술대학에서 첼로를 전공. 1991년 귀국해 서울대 대학원 국악작곡과에 다니며 명창 박동진을 사사. 부산시립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하다 1995년 대형 창작뮤지컬 ‘명성황후’를 통해 한국 뮤지컬 음악감독 1호가 됐다. 이후 ‘오페라의 유령’, ‘미스사이공’, ‘시카고’, ‘아이다’ 등 명작 뮤지컬의 음악을 맡으며 국내 최고의 음악감독으로 떠올랐다. ‘라스트파이브이어스(2008)’, ‘퀴즈쇼(2009)’로 음악감독이 아닌 연출가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았다.
2010년 환경재단의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KBS연예대상 ‘특별상’을 수상. 최근 금융회사 CF에 출연해 소비자광고모델 호감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 옥주현은?
국민요정 걸그룹 ‘핑클’ 출신의 가수 겸 뮤지컬배우. 경희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으며 핑클(9장)과 솔로활동(3장)을 합쳐 모두 12장의 음반을 냈다. 2005년 ‘아이다’로 뮤지컬 데뷔 이후 캣츠(2008), 시카고(2008ㆍ2009ㆍ2010), 브로드웨이42번가(2009), 몬테크리스토(2010)에 출연.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신인상(2005), 더 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2008)ㆍ여우인기상(2009), 제1회 서울문화예술대상 뮤지컬배우 대상 수상.
KBS 2FM ‘옥주현의 가요광장’의 진행을 맡아 오후 12시부터 2시간 동안 청취자들과 만나고 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