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버스의 수주 뒤집기도
세계 상업 항공기 시장의 양대 강자로 통하는 미국의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는 건당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공급계약을 따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부딪친다. 매출 10억 달러당 약 1만10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되기 때문에 누가 계약을 수주하느냐에 따라 미국과 유럽 경제의 희비가 엇갈릴 정도다.
최근 수년간 보잉이 잇달아 에어버스를 누르고 계약을 따냈는데 이는 미국 외교관들이 ‘상당한 힘’을 발휘한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를 인용해 2일 보도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국무부 외교전문 수백 건에는 미 외교관들이 보잉의 해외 수주를 적극 지원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드러난다. 일부 나라에서는 에어버스로 거의 낙찰된 단계에서 미국 정부가 뒤늦게 뛰어들어 보잉으로 바뀐 사례까지 있었다. NYT는 미 외교관들이 겉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수행했으며 해당국 고위층을 상대로 정치공작과 회유를 하는 식으로 ‘판매 중개상’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고 전했다. 또 최종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구매국의 까다로운 요구를 수용하는 특전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전문에 따르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보잉과 에어버스가 사우디아라비아 시장을 놓고 경쟁하던 2006년 9월 미 재무부 고위 관리를 통해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국왕에게 친서를 보냈다. 에어버스 대신 보잉 항공기 43대를 사라는 촉구가 담겨 있었다. 압둘라 국왕은 수락 조건으로 부시 대통령이 타는 ‘에어포스 원’에 설치된 통신 및 방어시스템을 자신의 전용기에도 갖춰 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승인했고 사우디는 33억 달러 규모의 구매 계약을 발표했다.
한편 터키는 지난해 1월 비날리 일디림 교통장관을 통해 제임스 제프리 터키 주재 미 대사에게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왕복선에 터키 우주인을 1명 동승하게 하거나 자국 우주 프로그램 및 항공 안전 프로그램에 대한 미 연방항공청(FAA)의 지원을 요구했다. 제프리 대사는 “어떤 식으로든 요청에 반응을 보여야 한다”고 본국에 보고했고 한 달 뒤 터키항공은 보잉과 항공기 20대 구매계약을 맺었다. 이 밖에 방글라데시는 보잉 항공기를 구입하는 대가로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착륙권을 자국 항공사에 부여할 것을 제안했고 결국 거래는 성사됐다. 요르단은 미국에 우정을 보여주기 위해 보잉 항공기를 구매하기도 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