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새벽 인력시장 르포
3일 오전 5시경 서울 양천구 신정3동 신정네거리역 앞 인력시장에 모인 일용직 건설근로자들이 난로 앞에서 추위를 녹이며 대화를 하고 있다. 벽에 걸어 놓은 가방에는 근로자 들이 직접 준비해야 하는 안전모, 안전화와 각종 작업도구가 가득 차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아직 일할 수 있는 게 행복”
오전 4시 40분경 천막 안으로 들어온 남궁담 씨(60)는 철근 콘크리트 양생 기술을 익힌 후 15년째 새벽에 이곳으로 나와 일감을 구하고 있다. 그는 “요즘처럼 날이 추우면 한 달에 10일 정도 일감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하루 일당은 14만∼15만 원. 그나마 신정네거리역 앞 인력시장은 용접, 철근 콘크리트 양생 등 숙달된 기술을 가진 근로자들이 모이기 때문에 단순 건설근로자보다는 일당을 2배 정도 많이 받는 편이다.
그래도 남 씨 얼굴엔 피곤하거나 풀죽은 기색이 없었다. “가끔이지만 일을 못 구하는 날엔 아내와 나들이를 하면서 피로를 풀기도 한다”며 웃었다. “일이 많아서 돈을 더 벌 수 있으면 좋죠. 하지만 내 나이에 아직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도 다행 아닙니까.”
건설 근로로 번 돈으로 세 자녀 모두를 출가시켰다는 남 씨는 이날 천막이 걷히기 전에 어디론가 떠났다. 이날 인력시장에 나온 근로자 40여 명 중 일감을 찾아 떠난 사람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오전 6시 15분까지 남아 있던 근로자들은 삼삼오오 해장국집을 찾아 떠났다.
○ “일꾼들이 행복한 한 해가 됐으면”
서울 종로구 창신동 인력시장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날 오전 일찍 모인 40여 명 중 일감을 찾은 사람은 10여 명 남짓이었다. 오전 6시가 넘어서도 일감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김옥자 할머니(80)가 운영하는 홍어집에 모였다. 40여 년째 같은 자리에서 홍어집을 하다 보니 새벽에 나오는 일용직 근로자들이 자녀가 몇 명인지, 인력시장에 나오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 속속들이 안다. 십수 년째 인력시장에 나오는 일용직 근로자들은 아예 김 할머니를 ‘엄니(어머니)’라고 불렀다. 근로자 강점돌 씨(74)는 “엄니 요새 솜씨가 예전만 못해, 맛있게 좀 해봐요”라고 농을 던졌다.
거친 일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정은 끈끈하다는 것이 김 할머니의 얘기다. “수십 년 전에 집에서 쫓겨났다며 부인이랑 아기를 안고 온 일꾼 한 명에게 월셋방을 구해주고 이불도 사준 적이 있다”며 “그 친구가 몇 년 전부터 자리를 잡았는지 갈비 한 짝씩 사들고 손주 데리고 와서 ‘엄니엄니’ 하는데 신기해 죽겠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가장 밑바닥에서 땀 흘려 일하고,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사람들이 일용직 근로자들 아니냐”며 “올해는 이런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