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떴다고요? 아직 레슨 받는 배우예요”
뮤지컬 배우 박은태는 예고에서 레슨을 하고, 그 돈으로 자신이 레슨을 받는다고 했다. 악착같이 연습을하는 이유는? 그의 표현대로 ‘포스가 넘치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운(運)도 실력이라는 말을 믿어요. 운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준비가 돼 있는 사람만이 잡을 수 있잖아요.”
운은 운을 낳았다. ‘모차르트!’의 공연을 본 관계자로부터 창작 뮤지컬 ‘피맛골 연가’의 주인공 ‘김생’ 제의가 왔다. 9월 다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서출 출신 선비로 사대부 여인과의 애절한 사랑을 펼치는 김생을 연기했다. ‘모차르트!’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의 신인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몇 달 새 단숨에 뮤지컬계의 기대주로 떠오른 것.
사실 생활은 별로 바뀐 게 없다. 성악, 발레, 재즈, 연기 레슨을 돌아가며 받으며 연습에 매진하는 ‘다람쥐 쳇바퀴’ 생활도 그대로다. 주변에서는 “떴다”고 부추기지만 그의 체감 정도는 달랐다.
“어느 정도 주연이 됐다고 생각해서 생활이 확 필 줄 알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하하. 작품을 쉬지 않고 계속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저는 그렇게 다작을 하는 게 부담스럽거든요.”
그 말은 사실이다. 대형 뮤지컬은 보통 트리플 캐스팅을 하고, 전체 40여 회 공연하는데 그가 설 수 있는 무대는 10∼12회. 2∼3개월의 연습 기간을 감안하면 한 해 세 작품을 해도 총 30여 회 무대에 서는 셈이다. “회당 개런티가 높지 않아서 연봉이 일반 봉급생활자 수준이에요. 예고에 나가 강의를 해 레슨비를 받고, 이 돈으로 제가 받는 레슨비를 충당하고 있어요.”
그가 뮤지컬 배우 수업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 학교에서 본격적인 뮤지컬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 한양대 경영학과 출신인 그는 ‘마냥 노래가 좋고, 무대에 서고 싶어서’ 대학 2학년 때 강변가요제에 출전했다가 동상을 받았다. 4학년 때 2006년 뮤지컬 ‘라이온킹’의 앙상블 오디션에 발탁돼 뮤지컬계에 입문했다. 그때까지 본 뮤지컬 공연은 2, 3편에 불과했다. “학생 땐 뮤지컬 한 편 볼 돈으로 영화 10편을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였다”며 웃었다.
최근 뮤지컬 시장은 아이돌이 주연을 속속 맡고 있다. 아이돌의 두꺼운 팬 층에 기댄 마케팅 효과를 노리는 것. 전문 뮤지컬 배우들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지고, 이들이 느끼는 상실감도 크다. 그룹 동방신기 출신의 김준수 씨(예명 시아준수)와 ‘모차르트!’를 함께한 박 씨의 생각은 어떨까.
“웃기는 얘기겠지만 사실 저 동방신기 팬이었거든요. 준수 씨를 가까이서 보니 신기했죠. 사실 ‘모차르트!’ 하면 준수 씨만 떠올리시는데 크게 서운하지는 않아요. 이미 스타가 돼서 뮤지컬로 넘어오신 분들하고 경쟁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그는 이런 ‘스타 마케팅’이 불가피한 측면은 있지만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본 해외 뮤지컬 시장은 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독일 뮤지컬 스타 우베 크뢰거의 단독 공연에 초청돼 유럽 시장을 본 적이 있어요. 배우의 퀄리티뿐만 아니라 무대 변환 등 기술적인 부분까지 아주 뛰어났죠. 관객들은 매진 사례를 이어가고, 제작사는 더 좋은 공연으로 돌아오고. 이런 분위기가 무척 부러웠어요.”
그는 5월 ‘모차르트!’의 재공연에 나서고, 첫 연극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새해 바람은 소박했다. “연기 연습을 많이 할 거예요. 연극 출연도 그 때문이죠. (제 연기의) 바닥이 곧 드러나겠지만 두렵지는 않아요. 연말쯤에는 ‘노래 좀 하던 박은태가 연기도 제법 늘었네’라는 소리를 듣는 게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