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 어떻게 평가하나
누리엘 루비니 교수와의 인터뷰는 뉴욕 사무실에서 책상을 마주한 채 격식 없이 이뤄졌다. 그는 넥타이도 매지 않은 셔츠 차림에 손으로 제스처를 써가며 세계경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풀어냈다. 오른쪽이 본보 신치영 특파원. 사진 제공 제이슨 주 씨
루비니 교수는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격에 버블이 형성되고 있다”면서도 한국의 버블 가능성을 높게 예상하지는 않았다.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기술혁신으로 다른 신흥국들의 기술 수준으로 쫓아올 수 없는 첨단 제품을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쟁 상대는 중국이 아니다. 일본과 유럽, 미국 기업이다. 값싼 제품이 아니라 첨단기술 제품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남북한 긴장관계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들이 많다.(인터뷰를 했던 시점은 연평도 사격 훈련 등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였다) 현재까지는 이런 지정학적 리스크가 한국의 금융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긴장이 더 고조되면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출렁거릴 게 뻔하다.”
―한국의 버블 가능성은 없는가.
“세계 각국에 풀린 과잉 유동성은 한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시장의 과잉 유동성을 피하기 위해 자본시장과 대출시장을 적절하게 관리해 왔다. 중국에 비해서는 과잉 유동성이 많지 않은 편이다. 가계부채가 좀 많지만 버블을 야기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은행권의 단기부채가 증가하기는 했지만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에 비해서는 적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외환위기 때처럼 외국인투자가 한꺼번에 빠져나갈 만한 리스크는 별로 없다.”
―지금도 글로벌 경제 어딘가에서 거품이 형성되고 있는가.
“일부 아시아 국가들은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의 거품 초기 단계에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경제에서 낮은 금리가 오랫동안 유지됐고 중앙은행이 시장에 과잉 유동성을 공급해 왔다. 거품이 생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이 돈은 이익을 쫓아 국제 상품시장이나 신흥시장에 몰렸다. 자산 가격의 거품을 만든 것이다. 아직 거품 붕괴를 우려할 만한 단계는 아니다.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 일부 신흥국의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아시아의 주식시장에도 거품이 끼고 있다. 모든 아시아 지역에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투자자들이 유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 국가 주식의 주가수익비율(PER)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보다 2, 3배 정도 높은 수준이다. 그만큼 고평가돼 있다는 말이다.”
―글로벌 경제를 전망하는 데 있어 현재 당신이 우려하는 가장 큰 리스크는 뭔가.
“첫째는 유로존의 위기다. 스페인 전염 여부에 가장 관심이 간다. 둘째, 미국의 지지부진한 경기회복, 셋째는 중국 경제의 연착륙 성공 여부다. 중국의 정책 실패는 글로벌 경제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그리스는 이미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의 지원 프로그램에 의존하고 있고 다음은 아일랜드 차례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은행 부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고 정부가 은행 부실을 처리하는 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30%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이제는 유로존의 위기가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전염되고 있다.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은 IMF가 처리할 수 있는 작은 경제지만 스페인이 문제다. 스페인 위기가 향후 몇 개월간 더 심각해지면 세계 금융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될 수 있다. 스페인은 큰 경제권이다.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인 동시에 구제하기도 쉽지 않은(too big to be bailed out) 나라다. IMF와 EU가 현재 자금으로는 감당하기에 부담스러운 나라다. 앞으로 수 주간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균형 잡힌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지난 10년간 미국 경제는 소비로 유지돼 왔다. 소비자들은 저축은 하지 않고 소비에만 관심이 있었다. 무역적자가 급증했다. 그리고 중국과 신흥국들은 소비보다 저축을 좋아했고 만드는 물건들은 미국 등 선진국에 팔아 무역흑자를 냈다. 이런 ‘선진국 소비-신흥국 수출’의 글로벌 성장모델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이 이제 소비를 덜하고 저축을 더해서 빚을 줄여야 하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균형성장을 위해서는 달러 가치는 더 떨어지고 중국 위안화와 신흥국 화폐 가치는 절상돼야 한다.”
―급격한 위안화의 절상과 중국 경제 냉각도 글로벌 경제에는 리스크 요인 아닌가.
“중국 당국은 ‘위안화를 20, 30% 절상하면 중국 경제가 무너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도 중국에 1년에 20, 30% 위안화를 절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이 지난 6개월간 2, 3% 절상한 건 너무 심했다. 분명 2%에서 20% 사이에 미국 중국 양쪽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수치가 있을 것이다. 위안화 절상은 과열된 중국 경제의 연착륙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최근 미국 의회가 중국산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한 견해는….
“내수가 안 좋은 미국이 성장을 하려면 수출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달러화 약세가 절실하다. 제로금리에다가 재정적자도 늘고 있으니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 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달러화 가치가 충분히 떨어지지 않고 있다. 연간 5000억 달러에 이르는 경상수지 적자를 내고 있는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이겠는가. 나는 분명 무역전쟁에 반대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통화전쟁과 무역전쟁의 위험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미국 달러화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을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 재정적자 때문에 달러화 가치는 분명 더 떨어질 것이다. 투자자들이 달러화 가치의 향후 움직임에 대해 확신이 없어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달러화를 대체할 만한 통화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중 어느 화폐도 미 달러화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그렇다고 금본위제로 돌아갈 수도 없다.”
―위안화는 어떤가.
“당분간 어렵다. 주요 통화가 되려면 유연한 환율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외국 화폐의 유입과 유출이 자유로워야 하며, 국내 자본시장을 자유화해야 한다. 중국이 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아직 멀었다. 뉴욕타임스가 20년 뒤에는 위안화가 주요 통화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년 뒤라면 모를까 5, 6년 후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렇게 보면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는 앞으로도 유지될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세계 모든 나라가 수출 경쟁력을 잃지 않으려고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고 있는데 달러화 지위가 어떻게 사라지겠는가.”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뉴욕 맨해튼 61억원짜리 고급주택 산 이유는▼
“시세보다 30% 싸… 부동산전망 바뀌진 않아”
“시세보다 30% 쌌기 때문에 매입한 것일 뿐 시장 전망은 바뀌지 않았다.”
그동안 주택시장 폭락을 예견해온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최근 뉴욕에 있는 고급 아파트를 550만 달러(약 61억 원)에 구입해 화제가 됐다. 루비니 교수가 사들인 아파트는 맨해튼 이스트빌리지 내 펜트하우스(고층건물 맨 위층의 고급 아파트)로, 330m² 규모의 3층 형태에 방 3개와 테라스를 갖추고 있다.
루비니 교수는 이 아파트를 매입하는 데 300만 달러의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을 받았고 60만 달러를 추가로 빌렸다. 시장에서는 루비니 교수가 이렇게 큰돈을 빌리면서 고가 아파트를 산 것은 그가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전망을 바꿨기 때문이라며 미국 주택시장이 바닥을 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대해 루비니 교수는 “해당 주택을 산 것은 맞지만 이는 시세보다 30% 싸게 나온 집이기 때문에 좋은 거래라고 생각해서 산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모기지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이 정도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다면 누구라도 집을 사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렇게 모기지를 받아 집을 사려는 주택 매입 수요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미국 주택시장은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다고 그는 지적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 화제의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