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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본 이 책]국가처럼 보기

입력 | 2011-01-08 03:00:00

◇제임스 C 스콧 지음·전상인 옮김 · 688쪽·3만5000원·에코리브르




서정민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영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질서(Order)와 무질서(Chaos)는 근대가 낳은 쌍둥이이며 근대성이란 ‘질서의 완성을 통한 무질서의 제거’라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한다고 말한다. 근대성을 깊이 체화한 근대국가는 완벽한 질서를 사회에 구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제임스 C 스콧의 ‘국가처럼 보기’는 바우만의 비판적 근대론의 연장선상에서 근대국가가 어떠한 식으로 그 불가능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념적으로, 그리고 체제적으로 진화하였는지를 설명한다. 또 그 정점에 해당하는 20세기 권위주의 정부의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분석하며 왜 국민의 공익증대를 위한 사회공학적(social engineering) 노력들이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파탄으로 매듭지어졌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0세기는 인류의 복지를 획기적으로 증진시키기 위한 초대형 국가 프로젝트가 많았다. 마오쩌둥은 1950년대 후반 중국 농업의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농민들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수억 명의 중국 농민을 약 2만5000개의 인민공사로 재편했다. 짧은 기간에 서구 선진국의 생산력을 따라 잡고 중국 농민 가정을 가사와 육아 노동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선의에서 출발한 이 노력은 근현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식량부족의 대재앙을 낳았고 3000만이 넘는 중국인이 희생되었다. 이 책에서 사례로 제시하고 있는 탄자니아와 옛 소련의 계획에 의한 촌락과 농장 형성의 시도 역시 되돌릴 수 없는 파탄과 기근으로 결론지어졌다. 이러한 재앙들이 정부의 악마적이고 가학적인 획책이 아니라면 대체 왜 발생한 것일까.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스콧은 재앙의 원인이 네 가지 상이한 요소의 결합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첫째는 국가의 가독성(legible) 향상을 위한 단순화 작업이다. 근대 초기부터 국가는 그 통치 대상을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해 숲, 농토 등의 공간과 도시, 성(姓), 중량, 언어 등의 생활을 규격화, 정량화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때 자연과 인간생활이 수천 년간 만들어온 보이지 않는, 그러나 지속가능한 많은 질서는 무시되거나 제거의 대상이 된다. 두 번째는 19세기의 근대주의에 싹이 트고 20세기 초반에 완성된 하이 모더니즘의 열망이다. 이념적 좌우를 막론하고 20세기 초반을 휩쓴 이 열정은 산업화와 과학, 기술의 진보에 대한 신념에서 비롯되며, 국가는 과학적 지식의 권위를 통해 자연과 사회를 역사와 전통과 단절된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재편하려고 하였다. 이상의 두 가지는 근대 세계에 모든 국가를 휩쓴 현상으로 어디에서나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으나 지구 곳곳에 있는, 정방형으로 잘 짜인 시카고나 브라질리아 같은 계획도시들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위의 두 요소가 모든 근현대 국가들에서 보이는 공통분모라고 한다면 권위주의적 국가와 허약한 시민사회라는 상호 연결된 두 요소는 사회공학적 야망의 파탄을 필연으로 만든다. 국가가 과학적 법칙이라는 명분으로 사회를 과격하게 개조하려 할 때 시민사회는 저항을 통해 일상생활을 유지하였던 토착적이고 실천적인 지혜인 실행지(實行智), 또는 메티스(metis)를 지켜야 한다. 메티스라는 불명확한 개념을 스콧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준법투쟁’이라는 사례를 통해 명쾌하게 설명한다. 노동조합이 작업지침에 쓰인 대로만 직무를 수행하고 비공식적인 요령과 임기응변을 거부할 때 공장은 멈추고 교통은 마비되기에 이른다. 아무리 자동화와 현대화가 이루어진 곳이라 하여도 생산과 소비는 비공식적인 실행지가 없이는 유지될 수 없으며 이러한 실행지를 끊임없이 축적하고 진화시키는 공간은 국가가 아닌 사회인 것이다. 국가가 억압적이지 않고 시민사회가 강력하다면 행정가나 계획가들의 이상적, 비현실적인 계획들은 국가와 사회의 교섭을 통해 좌절되거나 현실적인 방향으로 개선될 것이다. 반면에 국가의 공상적인 계획들이 국가권력의 독점적 지위를 통해 맹목적으로 수행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동서양과 근현대 200여 년을 아우르는 사례 연구를 통해 근대국가의 깊은 욕망을 읽어내는 이 책은 어떻게 근대의 시장경제가 인류의 일상생활을 근원적으로 변형시켰는지를 추적한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에 비견할 만한 대작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로부터의 계획’에 대해 과도하게 적대적인 저자의 시각은 요즈음 한국사회 일각에서 보이는 과거 권위주의적 발전국가에 대한 지나치게 긍정적인 향수만큼이나 맹목적이다. 전 국민의 절반이 하이 모더니즘의 흔적이라 할 만한 고층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정상적인 현상은 1970년대 초반 정부의 아파트 홍보 및 주택공사를 통한 대단지 개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수많은 민간 개발업자의 수익창출 노력과 대중의 근대적 삶에 대한 환상이 근저에 있다. 새마을운동 역시 위로부터의 계획만큼이나 밑에서부터의 참여가 그 확산의 요인이었다. 국가는 근대이고 사회는 전통이라는 이분법적인 시각 역시 지나치게 도식적이다.

몇몇 이론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현대 한국의 국가와 사회를 이해하는 데 많은 화두를 던진다. 다학제적인 접근법은 사회과학을 넘어 도시공학, 농업사회학 등 광범위한 영역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을 매료시킬 것이다. 원본에 충실한 성실한 번역 역시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이다.

서정민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