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1984년이 반복되리라는 기대는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바마가 캐넌의 책에서 배운다면 혹시 모른다. 그 책은 리더십에 대한 교훈으로 가득 차 있다.
레이건에 대한 찬양은 지난주 극에 달했다. 전미 공화당위원회 의장 선출과정에서 사회자는 후보자들에게 레이건은 빼고 정치적 영웅을 거론해 달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레이건이라면 하원의 헌법낭독 시간에 잠이나 잤을 것이다. 그는 ‘시민-정치인(citizen-politician)’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졌지 법안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몰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본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알고 있었던 것은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메시지가 자신의 정책이나 행동 혹은 사실과 다르다 하더라도…. 어떤 정치인도 레이건의 밝고 소박한 친근성(할리우드에서 연마된 것이다)을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오바마는 원하기만 하면 발할 수 있는 자신의 빛이 있다. 그건 지미 카터나 월터 먼데일 같은 레이건의 정적은 갖지 못했던 것이고 말만 하면 입에 거품을 무는 티파티 정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레이건이 감동을 주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화―알고 보면 다 영화가 만든 픽션이다―를 반복한 습관에 대해 캐넌은 말하고 있다. 레이건과 달리 오바마는 환상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진실한 얘기조차도 반복하지 못한다. 바로 이것이 그가 서명한 지 9개월여가 지난 건강보험 법안을 다시 팔아야 하는 이유다.
레이건의 재능은 또 적들(파업에 나선 관제사이건 악의 제국이건)을 집어내 가차 없이 비판하는―그러면서도 냉정을 잃지 않는―능력이다. 오바마는 부시에 대한 비판을 멈췄지만 레이건은 민주당 집권 시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의 흥청망청을 비난하는 일에서 물러난 적이 없다. 레이건은 투덜대는 사람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악담을 낙관으로 감쌌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오바마는 유세에서 위대한 소통자였다. 그러나 그는 백악관에 들어와서는 그런 시도를 거의 해보지 않았다. 이기든 지든 그는 미국식 공정함의 원칙이 걸린 이민 개혁 등의 싸움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자신의 경제철학의 체계도 세워야 한다. 그가 오바마노믹스를 정의하지 못하면 정적들은 세금이나 쓰는 사회주의로 몰아붙일 것이다. 또 티파티적 위선의 굵어지는 눈보라를 레이건식 유머로 막아내야 한다.
프랭크 리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