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천년학’ 이후 4년 만에 내놓는 ‘달빛…’은 전통 문화재인 한지(韓紙)를 소재로 한 영화다. 박중훈이 한지 복원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공무원 역을, 강수연이 그 과정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PD 역을 맡았다. 전주시와 영화진흥위원회, 동서대로부터 제작투자 지원을 받아 2010년 초 촬영을 시작해 5월 말 완료했다. 그해 11월 개봉할 예정이었지만 3월 17일로 최근 개봉일을 확정했다.
크랭크업 후 영화계에는 한때 ‘임 감독 새 영화의 극장 개봉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한 소문이 돌았다. 소재, 캐스팅,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섞은 형식 등이 젊은 관객층의 구미를 당기기 어려운 요소로 여겨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8월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미디어플렉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메이저 배급 3사 대표들이 이례적으로 의기투합해 공동 투자배급을 약속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영화의 배경이 전주가 된 것은 종이를 많이 생산하는 고장이기 때문이 아니다. 임진왜란 때 전주 사고(史庫)에 보관돼 있던 실록만 무사히 옮겨져 역사의 맥을 이은 사연을 계기로 삼았다. 임 감독은 전주에서 사고 복원 작업에 관여한 교수들을 영화에 출연시켰다. 영화 제작이 마무리된 지금도 ‘한지에 대해서 들려줄 얘기가 있다’며 임 감독을 만나고 싶다는 요청이 간혹 온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임 감독이 한지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는 데 전문가들의 관심이 그만큼 남다른 것이다.
“지금은 존재조차 희미해졌지만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한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생활자재였죠. 소중한 우리 것의 끊어진 자취를 다시 잇는 데 내 영화가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받아든 소주는 어쩐지 따뜻했다. 고3 시절 봄날 오후 ‘서편제’를 보려고 극장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며 받았던 햇볕처럼. 영화 하나가 어떤 전통문화 장르의 붐을 일으키는 일이 임 감독 이후, 다시 벌어질 수 있을까. 개봉을 기다린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