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미달 시말서 쓰게 하는 영업 않겠다”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국내에서 ‘중소기업 현장에 가장 정통한 뱅커(은행원)’로 평가받는다. 그는 “앞으로 중소기업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게 무엇인지 빠르게 발굴해서 현장에 적용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12일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에만 60회 이상의 영업캠페인과 프로모션을 했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힘든 만큼 그 뿌리를 자르겠다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동안 기업은행의 자산 늘리기에 일조했던 영업캠페인을 갑자기 없앨 경우 부작용이 생길 것이란 우려도 일축했다. 그는 “전임 행장 때부터 이런 영업 관행을 바꾸기 위해 6개월 이상 타당성 분석을 했다”며 “앞으로 은행 간 경쟁은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으로 바뀌는 만큼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영업문화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은행권에서는 어떤 기업의 성장 가능성이 7이고 부실 위험이 3이면 대출을 해주고, 이 비율이 반대라면 대출을 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출은 로봇도 할 수 있습니다. 은행들의 진정한 승부는 성장 가능성과 부실 위험이 5 대 5 언저리에 있는 중소기업 대출에서 판가름 날 것입니다.”
조 행장은 “그레이존에 있는 중소기업을 도태시키지 않고 성장시킬 수 있는 금융회사는 오랜 기간 현장에서 같이 호흡하며 오너 기업인의 의지를 끊임없이 관찰해온 기업은행뿐”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이들의 목소리를 빨리 수렴해 영업에 반영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은행장 직속으로 미래기획실을 신설했으며 조만간 가시적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변화들은 영업의 내실을 다지고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 전임 행장부터 이어져온 중장기 전략이나 비전 자체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사실 그는 이전까지 수석부행장으로 일하면서 현재의 영업전략과 중소기업 지원 및 부실 관리 프로그램의 큰 틀을 만든 주역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기업은행의 순이익은 지난해 3분기까지 1조482억 원, 연간으로는 1조4000억∼1조5000억 원에 이르러 은행권에서 신한금융지주에 이어 2위에 오를 것이라는 게 금융가의 관측이다.
조 행장은 지난해 12월 29일 취임한 후 ‘기업은행 창립 후 첫 공채 출신 행장’ ‘10년 넘게 일본 지점에서 근무한 국내 금융권의 대표적인 일본통’ 등의 수식어로 인지도를 높였다. 특히 1990년 암 진단(나중에 오진으로 판명)으로 수술을 받고도 문병객들을 오히려 위로하고 도쿄사무소의 지점 승격인가까지 받아낸 것은 은행권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이와 함께 가까운 지인들 사이에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마다 108배를 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종교적 의미 없이 순수하게 건강을 다지려고 시작한 게 12일로 벌써 690일째다. 단순히 절만 하는 게 아니다. 고개를 숙일 때마다 부모와 친지, 고객과 지인, 기업은행 임직원의 얼굴을 떠올리며 건강과 행복, 번영을 기원한다고 한다.
“마지막 108번째 기원 대상은 항상 똑같죠. 기업은행이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은행이 되게 해달라고 기원합니다.”
그의 취임은 중소기업인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지방 산업단지의 한 중소기업 사장은 “중소기업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은행장이 됐으니 상생(相生)이 제대로 될 것”이라고 환영했고, 몇몇 기업인은 전화를 걸어와 “우리가 ‘조준희 주식’(기업은행 주식)을 1만 주, 2만 주씩 사서 응원할 테니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
조 행장은 “기업은행이 잘못하면 국가 경제에 폐를 끼치는 만큼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며 “올해 은행권 경쟁구도가 4강 금융지주 체제로 바뀌어 쉽지 않은 한 해가 되겠지만 내실경영을 통해 기업은행의 금융영토를 차근차근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