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이자는 사건 발생일이 아닌 항소심 끝난날부터 계산”
과거 군사정권 시절 수사기관의 고문 등이 자행됐던 시국사건 피해자에게 지급할 손해배상금의 이자를 사건 발생 시점이 아니라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항소심 변론이 끝난 시점부터 계산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그간 많게는 수백억 원에 이르렀던 과거사 사건의 배상금 지급 규모가 크게 줄어들게 됐다.
○ 과거사 사건 배상금 크게 줄어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13일 일명 ‘아람회 사건’ 피해자와 유족 등 3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원고들에게 배상금과 이자를 합쳐 206억 원을 지급하도록 한 항소심을 깨고 총 지급액을 90억 원으로 대폭 낮췄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통상 지연손해금(이자)은 불법행위가 일어난 시점부터 발생한다고 봐야 하지만 불법행위가 일어난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통화가치 등이 크게 변한 때에는 예외적으로 사실심(항소심) 변론이 종결된 날로부터 발생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피해자 및 유족들이 입은 손해배상금을 현재의 통화가치를 기준으로 정해놓고서 이 금액에 대해 불법행위가 일어난 수십 년 전부터 계산한 이자를 보태 지급하는 것은 ‘배(배상금 원금)보다 배꼽(이자)이 더 큰’ 과잉배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아람회 사건 피해자 및 유족들은 항소심 변론이 끝난 지난해 2월부터 계산한 11개월 치 이자 4억 원을 포함해 90억 원만 지급받게 됐다.
이날 대법원은 1961년 혁명재판소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당한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유족이 낸 소송 배상액은 99억 원에서 29억 원으로, 간첩 누명을 쓰고 복역한 납북어부 서창덕 씨 사건 배상액은 14억 원에서 6억 원으로 각각 낮췄다.
○ 대법 “배상금 다시 계산할 필요 있어”
이날 판결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다른 과거사 사건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피해자 및 유족들에게 지급해야 할 돈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에 따르면 이날 선고가 난 4건을 포함한 과거사 관련 손해배상 소송은 모두 54건으로 피해자 및 유족들의 청구금액은 3500억 원에 이른다.
한편 노무현 정부 시절엔 검찰이 상소(上訴)를 포기해 피해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거액의 배상액이 이미 확정된 사건들이 있어 형평성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수지 김’ 사건의 경우 2003년 9월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유족에게 범죄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이자를 계산해 총 42억 원을 배상하도록 한 1심 판결에 대해 검찰에 항소 포기를 지시한 바 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