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거부 결말은 끔직한 비극
바이킹들은 뛰어난 항해술을 바탕으로 영국 등 유럽 각국에 발을 디뎠고, 척박한 땅인 그린란드에도 뿌리를 내렸다. 영국에서는 지금도 바이킹이 도착한 날을 기념하는 각종 축제가 열린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진행된 새해 축제에 바이킹차림의 참가자들이 횃불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노르웨이에서 2400km 이상 떨어진 얼음과 돌산으로 뒤덮인 그린란드. 이 동토(凍土)의 땅에는 오래 전 사라진 사람들과 문명이 있었다. 984년부터 500년간 바이킹 정착민들이 그린란드에 거주했다. 이들은 성당과 교회를 세우고, 라틴어와 고대 노르웨이어로 글을 썼다. 철로 연장을 만들고 소와 양, 염소도 키웠다. 기록에 따르면 1000년경에는 인구가 거의 5000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그런데 유럽의 최신 유행을 따라 옷을 입고 유럽식 생활을 하던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유럽인들이 1500년대 후반 그린란드를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는 잘 지어진 중세 유럽 도시의 흔적과 이누이트 족들만이 남아 있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문명의 붕괴(Collapse)’라는 책에서 소개한 사례다.
바이킹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누이트들이 생존했다는 사실은 그린란드 거주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린란드 바이킹 정착민의 몰락은 포용이 부족한 사회가 자연적,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 바이킹의 비극 그린란드 바이킹들은 반달바다표범을 사냥하면서 살아가던 이웃의 이누이트 족과는 교역을 하지 않고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자원이 부족한 동토에 거주하는 정착민이 아니라 기독교인이자 유럽인으로 생각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보다는 과거의 생활양식을 고수하려고 노력했다. 목초지가 부족한 척박한 동토에 살면서도 과거처럼 목축을 고집했다. 추운 날씨에 적응하려면 이누이트의 두툼한 소매와 모자가 달린 모피 옷이 제격이었다. 하지만 바이킹들은 유럽의 패션을 세세한 부분까지 따라했다. 그들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았으며 오히려 유럽인보다 더 유럽인처럼 처신하려고 애썼다.
바이킹 정착민들은 오랜 기간 척박한 땅에서 살아온 이누이트들을 벤치마킹하지 않았다. 이누이트들은 지천에 널린 눈으로 이글루(igloo)라는 집을 짓고, 고래와 바다표범의 기름을 태워 집을 난방하고 불을 밝혔다. 배를 지을 때는 골조에 바다표범 가죽을 씌워서 카약을 만들었다. 우미악(umiaq)이라는 이름의 이 배를 타고 너른 바다로 나가 고래를 사냥했다. 고래는 먹을거리가 부족한 그린란드에서 아주 훌륭한 식량원이 됐다. 이외에도 벙어리장갑, 작살, 부레로 만든 부표, 개 썰매 등 1500년대 후반에 다시 찾아온 유럽인들을 놀라게 한 이누이트들의 훌륭한 생존기술을 바이킹들은 전혀 따라 하지 않았다.
더 어이없는 일은 그린란드의 바이킹들이 생선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고기잡이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생선을 즐겨먹었던 노르웨이인과 아이슬란드인의 후예인데도 그들은 지천으로 널려있는 물고기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웃한 이누이트의 생활양식을 미개하고 야만적인 것으로 깔보았기 때문에 생선을 먹지 않는 금기가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최후의 바이킹들은 1400년대 어느 시점에 모두 죽은 것으로 보인다. 죽음의 원인은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마지막까지 서로 처절하게 싸우다가 생긴 부상 때문이었다. 변화를 거부한 대가로 끔찍한 종말을 맞은 것이다.
○ 레드 퀸 “떠밀리지 않으려면 움직여라”
“연예계는 센 물살과 같아서 제자리에 있으려고 하면 뒤로 떠밀려 내려갑니다.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겨우 제자리에 있게 됩니다. 죽을힘을 다해 앞으로 가려고 해야 겨우 조금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가수이자 연예기획자인 박진영 씨는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원더걸스를 미국에 진출시키기 위해 고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는 루이스 캐럴이 쓴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붉은 여왕(Red Queen)’이 앨리스에게 한 얘기를 인용한 것이다. 자리를 조금이라도 바꾸려면 적어도 지금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시카고대의 진화학자 밴 배일른은 이 이야기를 생태계의 쫓고 쫓기는 평형관계를 묘사하는 데 사용했다. 아프리카 초원의 치타와 영양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상대방 또한 더욱 빨리 달리려고 애쓰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완전하게 제압하지 못한다. 결과는 겨우 배를 곯지 않을 정도, 그리고 겨우 멸종하지 않을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치타와 영양은 둘 다 더욱 빨리 달리는 쪽으로 진화한다. 그래서 이러한 진화론적 원리를 ‘레드 퀸 효과(Red Queen Effect)’라고 부른다. 이 효과는 생물계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가 사라진 기업들의 얘기는 수없이 많다. 특히 성공한 조직일수록 그렇다. 과거의 성공 경험과 이로부터 가장 큰 수혜를 받고 있는 기득권 집단이 변화를 가로 막기 때문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암적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린란드 바이킹의 비극도 이렇게 시작됐을 것이다.
정현천 SK에너지 상무 hughcj@lycos.co.kr
정리=박용 기자 parky@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 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73호(2011년 1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개인 구독 문의 02-721-7800, 단체 구독 문의 02-2020-0685
튀르크 10만 대군에 맞선 비잔틴 7000병사
▼ 전쟁과 경영 1453년 4월 메메드 2세가 이끄는 오스만튀르크 군이 비잔틴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쳐들어왔다. 10만 명이 넘는 튀르크 군에 맞선 비잔틴 육군 수비대는 고작 7000명이었다. 비잔틴의 해군 역시 교역하려고 콘스탄티노플 항구에 와 있다가 자원한 제노바와 베네치아 무역선 선원들로 갑작스레 꾸려졌다. 선원들은 해적과 별다르지 않을 정도로 거칠고 불안정했다. 그러나 이들은 함락 위기에 몰린 콘스탄티노플에서 아비규환의 살육이 벌어지자 도망가지 않고 마지막까지 피란민들을 구조했다. 특별히 선량하지도 않았던 그들이 놀라운 희생정신을 발휘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이는 바로 절체절명의 순간에 ‘극한의 고통’을 공유한 데 따른 것이었다. 기업 현장에서도 계산과 이해관계만으로 얽힌 연대가 아니라 서로의 삶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공유가 있을 때 ‘놀라운’ 일을 기대할 수 있다. 비잔틴 군의 사례를 소개한다.
기업도 콜레스테롤 쌓이면 한순간에 몰락
▼ Harvard Business Review 기업에도 사람 몸처럼 콜레스테롤이 쌓일 수 있다. 조직 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거나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세계적인 상업용 부동산 관리회사인 존스 랭 라살은 세입자와 상업용 부동산 관리, 건축물 개발 프로젝트 등 기능별로 3개 사업부로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각 사업부가 각각 다른 회사처럼 운영되다 보니 많은 문제가 생겼다. 당시 미국 뉴욕에서 다국적기업을 대상으로 한 부동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도 사업부가 협력해서 여기에 뛰어드는 게 쉽지 않았다. 이에 따라 존스 랭 라살 최고경영진은 2002년 별도 조직을 신설했다. 덕분에 이 회사가 뉴욕에서 관리하는 상업용 부동산은 25% 증가했다. 기업 콜레스테롤이 쌓이기 시작하면 겉보기에는 잘 돌아가는 듯한 회사가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이런 위험을 조기에 감지해서 막기 위한 방안을 제안한다.
트렌드를 주목하라, 당신 몸값이 올라간다
▼ Career Planning 1990년대 후반 명문대 공대를 졸업한 A 씨는 PC통신업계 선두기업이던 B사에 연구직으로 입사했다. 그는 전문성을 갖추는 것만이 무기라고 여기고 연구에 몰두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주변 직장 동료들은 하나둘씩 인터넷 통신회사로 이직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성실하게 일했다. 그러는 사이 시대 흐름은 인터넷 통신 쪽으로 돌아섰고, PC통신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A 씨는 PC통신에 관해서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췄지만, 그를 원하는 기업은 이제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는 현재 통신 관련 중소기업에서 개발이사라는 직함을 갖고 있지만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경력을 잘 관리하려면 자신이 속한 분야의 다양한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맡은 업무를 수행하기에 급급해 자신의 산업 분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갖지 못하는 직장인이 많다. ‘지속 가능한 커리어’를 구축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