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한몸이었던, 시와 그림의 섞임


시와 그림이 교류하는 ‘시화일률’전에서는 조오현 시인의 ‘아득한 성자’를 회화로 재해석한 이인 씨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74명의 시인과 43명의 화가가 펼치는 소통의 장이자 그림 속의 서사성, 문학 속의 회화성을 짚어보는 자리다. 사진 제공 가나아트센터
이들 작품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2월 6일까지 계속되는 ‘시화일률(詩畵一律)전’에서 볼 수 있다. 현대시박물관과 계간 ‘시와 시학’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시는 형상 없는 그림이요, 그림은 형상 있는 시’라고 했던 선인의 마음가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시다. 기획자 문학평론가 김재홍, 미술평론가 윤범모 씨에 따르면 ‘시와 그림은 한몸이고 한마음이라는 그 엄정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마련한 새로운 만남의 무대이다.
전시장에선 글이 그림에게, 그림이 시에게 말을 걸며 ‘아름다운 동행’을 추구한다. 시인 고은 김남조 김지하 김초혜 이시영 씨 등 74명의 시, 고영훈 권기수 김지혜 서유라 등 미술가 43명의 그림과 조각 80여 점이 어우러져 있다. 화가들은 대상이 되는 시를 읽고 스스로 시를 골랐다. 문학과 미술의 만남뿐 아니라 원로부터 청년작가까지 세대와, 극사실에서 추상까지 다양한 경향을 아우른 축제란 점도 주목된다. 서울 전시를 마치면 가나아트부산에서 2월 23일부터 3월 13일까지 이어진다. 02-720-1020
‘내려갈 때/보았네/올라갈 때/보지 못한/그꽃’
전시장 입구에서 고은의 시 ‘그 꽃’과 고영훈의 그림이 반긴다. 화가 김정헌 석철주 씨도 같은 시로 작품을 선보였다. 김지하의 ‘백학봉 1’을 다른 느낌으로 해석한 류민자 이종구 씨의 그림을 비교감상하는 것도 흥미롭다.
고은 시인의 ‘그꽃’을 시각 이미지로 표현한 고영훈 씨의 작품
이 밖에 이기철의 ‘지상의 끼니’를 원고지 위에 밥주발로 형상화한 배종헌 정희성의 ‘봄날’을 책의 표지화처럼 그린 서유라, 유자효의 ‘세한도’를 깨알만 한 글자로 추사의 세한도로 재현한 유승호 씨의 작품 등이 눈길을 끈다.
주 전시와 별도로 시인의 체취가 더욱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전시공간도 마련돼 있다. 만해 한용운이 직접 쓴 한시(尋牛詩) 10폭 병풍을 비롯해 서정주 고은 김지하 시인의 육필 원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청록집’ 등 희귀본 시집을 접할 수 있는 공간도 둘러보기를 권한다.
1, 2부 전시장을 잇는 통로에는 현대시박물관이 소장한 유명 시인의 초상과 대표시를 볼 수 있다. 다른 쪽 통로에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시인 강은교 정호승 김종철 씨 등이 자신의 시를 친필로 쓴 액자가 나란히 걸려 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술을, 미술 애호가에게는 시와 더 친해지는 길을 일러주는 행사란 점에서 누구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이번 전시가 빡빡한 일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하늘에는 별이, 땅에는 꽃이, 사람에게는 시!’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