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동네에서 ‘짠이’(영어 이름 Johnny의 전라도식 발음)라 불렸던 나는 어릴 적부터 유별나 집보다 친구 집에 머무를 때가 많았다. 동네 어른들이 “아따, 이놈 미국 넘 같은디 이쁘구만” 하면 “이놈이 머여, 내 이름은 짠이여”라고 맞받곤 했다.
아버지는 섬으로 선교를 다니느라 한번 집을 나서면 많은 경우 최소 2, 3주 집을 비웠다. 어머니는 결핵 퇴치 사업에 바빠 5남 1녀를 챙기기 힘들었다. 나는 자연히 린튼가보다는 순천시 매곡동 동네 어른들 손에 컸다. 친구 집에서 놀다가 그 집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으레 “아버지 오셨다∼”는 소리가 식구들의 입을 타고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나도 함께 숨을 죽이고 벌떡 일어나 친구 아버지께 넙죽 인사하며 귀가를 반겼다. 아버지는 집안의 중심이자 어려운 존재란 걸 그렇게 알았다.
날이 저물면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골방 아랫목에 모였다. TV도 인터넷도 전기도 없던 그 시절 동네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는 경험 많은 노인들의 스토리텔링이었다. 대나무 밭에서 호랑이를 봤다는 무용담, 전쟁통에는 돼지도 울음을 멈추고 고요하더라는 기억, 집 앞에 시신이 널려 있었던 이야기….
이야기엔 삶의 지혜가 넘쳤다. “바람이 저쪽으로 불면 비가 오고, 이쪽으로 불면 비가 그친다” “씨는 언제 뿌려 언제 거둬야 한다”는 자연의 섭리, “남한테 피해 주지 말아야 하고 남이 도움을 청하면 기쁘게 도와라”라는 공동생활의 원칙….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도 학교도 아닌 아랫목에서 배웠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질서와 정, 순정과 의리 같은 사람살이의 가치를 배웠다. 미국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을 포함해 수많은 고위 인사를 만나도 품위와 자신감을 잃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핵심 경쟁력인 둥글둥글한 성격은 ‘아랫목 교육’의 힘이다.
한국은 제국주의의 침략과 전쟁으로 인한 폐허 속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까지 유치하며 경제대국을 일군 기적의 나라다. 나는 한국인의 저력의 바탕은 ‘공동체 문화’에 있다고 본다. 피를 나눈 사람만이 가족이 아니라 온 동네가 확장된 가족 공동체로서 공생하며 시너지를 냈다. 아랫목에서 공동체는 함께 어울리고 상대를 존중하며, 사람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갖는 인재를 길렀다.
인요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