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 류샤오보 지음·김지은 옮김·420쪽·1만8000원·지식갤러리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중국학부 교수
중국 지린(吉林) 성 출신 중문학자인 그는 1989년 해외 교환교수로 체류하던 중 톈안먼사건을 맞아 귀국하면서 중국정치의 현장에 참여한다. 그 후 20년 동안 국가전복선동죄 등의 죄목으로 투옥과 연금을 반복하면서 인터넷과 잡지에 발표한 글을 모은 이 책 ‘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는 류샤오보 개인을 넘어 현재의 중국이 앓고 있는 중병(重病)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가 단순한 ‘반정부 투사’가 아니라 깨어 있는 중국의 진정한 지식인인 이유다.
그는 중국을 혼란과 폭력의 광풍으로 몰아갔던 문화대혁명(1966∼1976) 이후 처음 대학교에 입학한 77학번이다. 10년에 걸친 정치폭력에 휩쓸려 대학의 정상교육이 중단됐던 시절이 끝나고 대학교로 돌아온 1977년도 입학생들은 지금도 중국사회의 희망이자 지식인의 대표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의 눈에 비친 중국의 ‘포스트 전체주의’ 사회는 경제개혁을 빙자해 권력을 강화하고 이권을 챙기는 관료사회와 ‘문지기 개’로 전락해 버린 중국의 지식인, 그리고 왜곡된 성문화로 도색된 중국문화가 서로 공모해 사람들의 희망을 짓밟는 사회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인권유린이란 비용을 치르고 얻은 것이라고 말하는 류샤오보.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서방국가로 가서 반정부 정치 활동을 펼치는 다른 망명 정치인과 류샤오보가 다른 점은 그가 지식인으로서 중국과 서방 문명의 한계성에 대해 명확한 견해를 보인다는 점이다. 중국정치를 논한 이 책 후기에서 그는 ‘편협한 민족주의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서양문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저급한 책일 뿐’이라고 자신에게 가차 없는 채찍을 들기도 한다. 또 ‘서양문화를 통해 중국의 문화와 현실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의적인 자아를 통해 서양문화’를 비판하자고 다짐한다. 톈안먼사건 당시 귀국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도 그의 인문학자로서의 감성이 드러난다. “병든 사회를 벗어나니 만신창이가 된 병자 하나가 낯선 세계를 헤매고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 놓이자 지혜로운 사람은 사라지고 우둔한 사람이 하나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는 기형적인 중국사회의 뿌리가 단지 중국공산당이 뿌린 씨앗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중국사회의 절망은 중국역사의 지속성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중국은 백 년 동안이나 외세의 침략을 받았는데도 오만한 민족주의가 깊이 뿌리박혀 있다. 바로 이 오만함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다.” “과거 애국주의가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이었다면 현재의 애국주의는 맹목적인 자신감, 허황된 자만과 복수로 뭉친 주도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의 관점에서 “중국의 독재체제는 수천 년을 이어왔고, 중국 공산당은 아직도 그 전통을 열심히 계승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시민사회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을 평가하면서도 그는 중국의 불균형한 경제개혁에 일침을 가한다. “중국의 경제기적은 체제 부패, 불공정한 사회, 도덕적 붕괴, 미래를 담보로 한 무절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국의 경제기적은 인권유린뿐만 아니라 막대한 경제비용과 사회비용을 치르고 얻어낸 기적이었다.”
그러나 자칫 숙명적 패배론으로 기울고 말았을 뻔했던 류샤오보의 지적 탐험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개혁개방으로 인한 경제성장과 인터넷의 보편화는 중국 당국의 엄격한 언론통제 속에도 공간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으며 비록 아직은 제한된 공간이지만 인터넷이 중국 언론매체를 변화시키고 시민사회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중시한다.
이 책 끝부분에는 류샤오보의 자작시와 재판 관련 진술 등의 자료를 더해 중국 양심수 재판의 현장감도 살려주고 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서의 류샤오보가 아니라 중국의 미래를 고민하는 양심적 지식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이 정도 양식을 지닌 맑은 지식인이 단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석방되지 않는 중국의 현실이 안타깝다.
지난해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노벨 평화상 시상식. 수상자인 류샤오보가 참석하지 못한 가운데 메달과 증서만이 빈 의자에 놓였다. 사진 제공 지식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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