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군화를 신고 1마일 이상 걸어보지 못한 사람은 훌륭한 군인의 모습을 표현할 수 없다.” 베트남전에서 총상까지 입었던 미국 해병대 출신 데일 다이 대령은 영화 ‘플래툰’에서 군사기술 자문역을 맡으면서 출연하는 주연들을 ‘제대로’ 훈련시켰다. 군화부터 신긴 것이다.
신병으로 입대한 갑돌이가 처음 당황하는 것은 ‘군화에 발을 맞추는 법’이다. 크든 작든 헌것처럼 보이는 새 군화에 발을 맞춰 천리행군을 하면서 조국을 위해 물집과 상처와 무좀과 싸우는 법을 배웠다. 다음으로 배우는 것은 ‘군화에 광내는 법’이다. ‘말표 구두약’에 침을 발라가며 다른 어떤 구두보다 번쩍거리게 만드는 법을 익히며 대한민국 군인의 자존심을 지켰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방기술 수준은 선진국 대비 78% 수준이다. 분야별로 보면 항공(70%), 화생방(73%), 감시정찰(75%), 지휘통신(77%)이 뒤떨어진다. 그 원인은 어처구니없게도 정보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보기술은 미래 무기체계의 기반으로, 한국의 민간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자부하는데 말이다.
무기체계는 10∼20년의 오랜 기간에 걸쳐 수천억∼수조 원을 투입하는 초대형 과제다. 정보기술은 하루가 멀다 하고 빠르게 발전하는 첨단기술이다. 초대형 장기과제가 재빠른 정보기술을 활용하지 못하니 뒤늦게 ‘설계 결함’이라는 생뚱맞은 진단을 듣고 깜짝 놀라게 된다. “뭐어∼, 설계 결하암∼.”
미국의 발명가 휫컴 저드슨은 군화를 즐겨 신었다. 불룩한 아랫배 때문에 끈을 매기 불편했던 그는 신고 벗기 편한, 끈이 없는 군화를 개발하려다 1893년 지퍼를 발명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 공군이 구명조끼나 비행복을 빠르게 입고 벗기 위해 지퍼를 채택하면서 지퍼가 널리 보급됐다. 어떻게 보면 군화 하나라도 빠르게 신고 벗기 위한 집요한 연구개발(R&D)이, 민간기술이라도 필요하면 바로 채택하는 조달정책이 세계 최고의 국방기술을 만드는 것이다.
사회지도층이나 그 아들이 군화를 신지 않으려 한다면 물이 새고 굽이 갈라지는 불량 군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군화에 문제가 생기면 ‘곰신’이 슬퍼하고, ‘곰신’은 아들에게 군화를 신기지 않으려 들 것이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