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만에‘왕의 귀환’을 꿈꾸었던 조광래호의 도전은 막을 내렸다.
조별리그에서 한국에 좋은 성적을 안겨줬던 곳, 알 가라파 스타디움에서 120분 혈투를 마친 뒤 승부차기에서 무릎 꿇은 한국 축구. 막내둥이 손흥민(함부르크)의 두 눈에 맺힌 그렁그렁한 눈물을 보며 마음이 함께 짠해졌다.
바로 직전까지 황재원(수원)의 극적인 골을 보며 절로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던 터였다. 평소 같으면 A매치를 보고도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에 몰두할 수 있었겠지만 상대가 영원한 라이벌 일본이었기에 마음에 걸린다.
그동안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작년 12월 서귀포 전지훈련부터 줄곧 아시안 컵 대표팀을 전담 취재하는 동안 내내 행복했지만 그만큼 쓰라림이 더해졌다.
한국을 떠나온 시간이 길어지고 지루하고 힘겨운 스케줄이 계속되자 잠시나마 답답하기 짝이 없는 도하를 떠나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마치 그 멍청한 생각 때문에 패한 것 같았다.
이곳은 술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다. 건조하고 모래 먼지가 많은 도시 곳곳을 구석구석 움직이다보면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하지만 일부 호텔의 외국인 전용 바, 외국인 클럽이 아니면 목을 축일 만 한 곳이 없다.
일본에 패한 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그동안 절제했던 맥주 한 잔을 했다. 가격도 너무 비싸 딱 한 잔만 했는데도, 어찌나 취기가 빨리 올라오던지.
일본의 까마귀 엠블럼이 달린 레플리카를 입고 실축 장면이 나올 때마다 환호하는 일본 팬들을 가만히 바라보자니 기분 역시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울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답답해할 필요도 없었던 것 같다. 비록 일본에 진 건 속상하지만 우리처럼 최고의 경기를 했던 팀도 없었다. 첫 경기, 이란 징크스를 모두 털어낸 한국 축구가 아닌가.
이청용이 근사한 말을 남겼다. 교체 아웃돼 미처 승부차기에 나설 수 없는 그였다. “너무도 아쉽고 서운하다. 하지만 승부차기 실패는 쓴 만큼 좋은 보약이 되리라 본다.”
그렇다. 한국 축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파이팅!
도하(카타르)|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