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미의 ‘식량 지원 정치’ 또 시작?
미국은 북한의 경제난이 심각했던 1996년 1만9500t의 식량을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2008년까지 대북 인도적 식량 지원을 북한의 핵 개발 등을 막기 위한 정치적 지렛대(레버리지)로 활용했다. 미국은 정부가 직접 지원하거나 세계식량계획(WFP) 유엔 비정부기구 등에 간접 지원하는 형태를 활용했다.
정부 당국자는 “최근 미국이 북한의 식량 지원 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 등을 앞두고 대(對)북한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미국이 ‘불량국가’인 북한과 핵 문제로 대치하는 동안에도 인도적 지원은 유지한다는 국제정치적 위신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은 이 중 일부인 16만9000t을 지원받은 뒤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2009년 3월 지원 거부 방침을 밝힌 후 다음 달 장거리 로켓 발사, 5월 2차 핵실험 등을 하며 미국과의 대결 모드로 들어섰다.
○ 무조건 식량 지원 재개 쉽지 않아
2009년 당시 북한이 미국의 식량 지원을 거부한 표면적인 이유는 식량분배를 투명하게 하기 위한 모니터링 약속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이 식량분배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를 요구하면서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모니터링 요원 증원을 요구했다. 북한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빌미로 북한 곳곳을 들여다보고 염탐하려는 속셈”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최근 뉴욕채널을 통해 지원 재개를 요구하면서 당시 미국과 한 모니터링 약속을 지키겠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대북인권특사도 지난해 3월 “대북 식량지원이 재개되려면 2008년에 미국과 북한이 합의한 모니터링 조건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북한 식량난 실태 검증부터 해야
북한은 만성적인 식량난을 겪고 있지만 2009년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식량 지원 중단으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해 말 현재 북한의 ‘식량확보율’(추가확보 곡물량/부족예상 곡물량)은 7.2%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낮았다고 4일 전했다.
그러나 정부는 외부에 알려진 북한의 식량난 실태가 실제보다 과장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정부 당국은 북한이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를 앞두고 3대 세습 후계자인 김정은의 후계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식량을 비축하고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 측에 “북한의 변화라는 전략적 목표를 상기한다면 대북 식량 지원은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 효과를 모두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은 북한 내 취약계층의 집단 아사(餓死) 등 인도적 위기를 막고 북한에 번창하고 있는 시장을 확대해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추동할 동력을 키우는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