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 기성용(오른쪽).
이유인즉 조별리그 미국과의 경기에서 안정환이 동점골을 넣은 뒤 이천수가 한 '스케이팅 골 세리머니'가 문제가 됐기 때문이라는 것.
월드컵 개최 몇 달 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렸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한국의 김동성은 1위로 골인하고도 안톤 오노(미국)에게 파울을 했다는 이유로 실격 판정을 받아 금메달을 빼앗긴 일이 있었다.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위풍당당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 박지성.
이천수는 이런 오노의 '헐리우드 액션'을 흉내 내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골 세리머니를 통해 특정인을 비방해서는 안된다'는 FIFA의 규정이 있기는 했지만, FIFA로부터 어떤 얘기도 나오지 않았고 결국 이천수에 대한 징계 소문은 누군가 꾸며낸 낭설로 결론 났다.
필자는 FIFA의 골 세리머니에 대한 규정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FIFA 규정에 따르면 상의를 탈의해서도 안 되고, 옷에 특정 문구를 써서 내보여도 안 된다. 이러니 골을 넣은 선수들이 그 기쁨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다.
현재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꼽히고 있는 아르헨티나 출신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그도 최근 골 세리머니 한번 잘못했다가 2000 유로(약 300만원)를 물게 됐다.
최근 골 세리머니를 잘못해 벌금을 물게 된 리오넬 메시.
26일 열린 스페인 프로축구 바르셀로나-라싱 산탄데르와의 경기에서 전반 33분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올 시즌 자신의 19호 골을 기록한 메시는 현장 중계 카메라 앞으로 다가가 유니폼 상의를 들췄다.
메시는 이날 어머니의 생신을 맞이해 골을 넣었을 경우, '생신 축하 세리머니'를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세리머니에도 스페인축구협회는 상벌위원회를 열어, 2000 유로의 벌금과 경고장을 부과했다.
25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15회 아시안컵축구대회 한국-일본의 4강전에서 나온 기성용(셀틱)의 '원숭이 골 세리머니'를 놓고 한 차례 파문이 일었다.
기성용은 이날 경기에서 전반 23분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뒤 일본 쪽 코너 부근으로 달려가 원숭이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는 등 원숭이를 연상케 하는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이렇게 되자 "기성용이 왜 갑자기 '원숭이 골 세리머니'를 했을까"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욱일승천기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사용하던 국기로 기성용의 말을 토대로 욱일승천기를 흔든 일본 응원단을 향해 반일 감정을 나타내기 위한 세리머니라는 분석이 나왔다.
또 다른 쪽에서는 스코틀랜드리그에서 뛰는 기성용이 지난해 10월 세인트존스턴과의 원정경기 때 관중석에서 "워, 워"하는 원숭이 소리가 들렸는데 나중에 같은 팀 소속의 차두리가 인종차별적 행위였다며 분개한 일이 있었고, 이런 스코틀랜드의 일부 몰지각한 팬들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한 세리머니였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언론에서는 "인종차별 행위를 일절 금지하는 국제축구연맹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이라며 비난하는 반면, 중국에서는 "기성용은 일본전에서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보여줬다"며 극찬하는 등 반응도 다양하게 나왔다.
기성용이 확실하게 왜 이런 세리머니를 했는지 밝히지를 않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스포츠를 사랑하는 팬으로 느끼는 점은 기성용이 이런 세리머니를 한 이유가 깊은 뜻을 가지고 한 것이든 즉흥적으로 한 것이든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혐오감은 일본 제국주의 때의 상징이었던 욱일승천기를 축구장까지 들고 나와 응원하는 일본 팬들에게 느끼는 것과 같다.
기성용이 '원숭이 골 세리머니' 대신 이런 세리머니를 했으면 어땠을까.
지난해 5월24일 일본과의 원정 평가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일본 팬들을 향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핀 채 아무런 제스처도 없이 그라운드를 질주했던 박지성의 바로 그 '위풍당당 골 세리머니' 말이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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