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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원숭이 골 세리머니’ 한 기성용이나, 욱일승천기 흔드는 일본 팬들이나…

입력 | 2011-01-30 12:32:33


'원숭이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 기성용(오른쪽).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의 일이다. 한국축구대표팀의 이천수가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벌금 처분을 받게 됐다는 소문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이유인즉 조별리그 미국과의 경기에서 안정환이 동점골을 넣은 뒤 이천수가 한 '스케이팅 골 세리머니'가 문제가 됐기 때문이라는 것.

월드컵 개최 몇 달 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렸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한국의 김동성은 1위로 골인하고도 안톤 오노(미국)에게 파울을 했다는 이유로 실격 판정을 받아 금메달을 빼앗긴 일이 있었다.

김동성과 선두 다툼을 벌이던 중 오노가 과장스럽게 두 손을 번쩍 치켜드는 행동을 했고, 심판진은 이를 김동성의 파울로 봤던 것.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위풍당당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 박지성.


이천수는 이런 오노의 '헐리우드 액션'을 흉내 내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골 세리머니를 통해 특정인을 비방해서는 안된다'는 FIFA의 규정이 있기는 했지만, FIFA로부터 어떤 얘기도 나오지 않았고 결국 이천수에 대한 징계 소문은 누군가 꾸며낸 낭설로 결론 났다.

필자는 FIFA의 골 세리머니에 대한 규정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FIFA 규정에 따르면 상의를 탈의해서도 안 되고, 옷에 특정 문구를 써서 내보여도 안 된다. 이러니 골을 넣은 선수들이 그 기쁨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다.

현재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꼽히고 있는 아르헨티나 출신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그도 최근 골 세리머니 한번 잘못했다가 2000 유로(약 300만원)를 물게 됐다.

최근 골 세리머니를 잘못해 벌금을 물게 된 리오넬 메시.


26일 열린 스페인 프로축구 바르셀로나-라싱 산탄데르와의 경기에서 전반 33분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올 시즌 자신의 19호 골을 기록한 메시는 현장 중계 카메라 앞으로 다가가 유니폼 상의를 들췄다.

속옷은 빨간색이었고 거기에는 '펠리즈 컴플레 마미(Feliz Cumple Mami)'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는 "어머니 생신 축하해요"라는 뜻.

메시는 이날 어머니의 생신을 맞이해 골을 넣었을 경우, '생신 축하 세리머니'를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세리머니에도 스페인축구협회는 상벌위원회를 열어, 2000 유로의 벌금과 경고장을 부과했다.

25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15회 아시안컵축구대회 한국-일본의 4강전에서 나온 기성용(셀틱)의 '원숭이 골 세리머니'를 놓고 한 차례 파문이 일었다.

기성용은 이날 경기에서 전반 23분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뒤 일본 쪽 코너 부근으로 달려가 원숭이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는 등 원숭이를 연상케 하는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이렇게 되자 "기성용이 왜 갑자기 '원숭이 골 세리머니'를 했을까"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기성용은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었다"고 한 뒤 자신의 트위터에 "정말관중석에 있는 욱일승천기를 보는 순간, 내 가슴은 눈물만 났다"는 글을 남겼다.

욱일승천기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사용하던 국기로 기성용의 말을 토대로 욱일승천기를 흔든 일본 응원단을 향해 반일 감정을 나타내기 위한 세리머니라는 분석이 나왔다.

또 다른 쪽에서는 스코틀랜드리그에서 뛰는 기성용이 지난해 10월 세인트존스턴과의 원정경기 때 관중석에서 "워, 워"하는 원숭이 소리가 들렸는데 나중에 같은 팀 소속의 차두리가 인종차별적 행위였다며 분개한 일이 있었고, 이런 스코틀랜드의 일부 몰지각한 팬들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한 세리머니였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언론에서는 "인종차별 행위를 일절 금지하는 국제축구연맹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이라며 비난하는 반면, 중국에서는 "기성용은 일본전에서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보여줬다"며 극찬하는 등 반응도 다양하게 나왔다.

기성용이 확실하게 왜 이런 세리머니를 했는지 밝히지를 않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스포츠를 사랑하는 팬으로 느끼는 점은 기성용이 이런 세리머니를 한 이유가 깊은 뜻을 가지고 한 것이든 즉흥적으로 한 것이든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혐오감은 일본 제국주의 때의 상징이었던 욱일승천기를 축구장까지 들고 나와 응원하는 일본 팬들에게 느끼는 것과 같다.

기성용이 '원숭이 골 세리머니' 대신 이런 세리머니를 했으면 어땠을까.

지난해 5월24일 일본과의 원정 평가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일본 팬들을 향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핀 채 아무런 제스처도 없이 그라운드를 질주했던 박지성의 바로 그 '위풍당당 골 세리머니' 말이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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