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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日도요타 간부의 친필편지

입력 | 2011-01-31 03:00:00


석동빈 산업부 차장

지난해 12월 말 생각지도 못한 편지 한 통이 회사로 배달됐다. 일본에서 온 편지였는데 발신자의 이름은 한국토요타자동차 사장이었던 지기라 다이조(千吉良泰三) 씨. 그는 4년간의 한국 지사장 역할을 마치고 지난해 1월 일본 본사로 돌아갔다.

봉투 겉면에는 정성들여 손으로 쓴 한글 주소와 이름이 있었지만 내용물은 그림이 그려진 의례적인 연하장에 간단한 사인 정도가 있으려니 예상하면서 속을 열어봤다. 그런데 하얀 편지지가 쑤욱 얼굴을 내밀었다. 편리한 e메일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넘쳐나면서 연애편지마저 거의 사라진 시대에 일종의 비즈니스 관계로 만난 이국의 친구에게 손으로 꼭꼭 눌러쓴 편지라니.

‘초겨울 추위가 매서워지고 있습니다만, 평안히 지내고 계신지요’라고 시작한 편지에는 최근 그의 일상이 적혀 있었다. 지기라 씨가 두 아들과 등산을 하며 찍은 사진도 한 장 들어 있었다. 곧 도쿄에 있는 도요타 부설 국제경제연구소에서 근무할 예정인데 일본에 오면 꼭 연락해 달라는 진심어린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편지를 쓴 날은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이었다.

가슴이 약간은 먹먹해왔다. 한 5분 정도는 멍해 있었던 것 같다. 일본인인 그가 어렵게 배운 한국어로 편지를 보내다니. 글씨가 반듯했으며 문법도 거의 틀리지 않았다. 초본을 쓴 뒤에 옮겨 적지 않고서는 그렇게 깔끔하게 한국어 편지를 써내려갈 수가 없었을 텐데. 편지를 쓰기 위해 그는 최소한 2시간은 정성을 쏟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한국에 있던 4년간 10번 정도는 만났던 것 같다. 2006년 첫 기자회견에서 그는 일본어를 썼지만 다시 만날 때마다 조금씩 말이 늘더니 한국을 떠나기 며칠 전 마지막으로 서울 중구 무교동 한 음식점에서 만났을 때는 한국어로 대화를 해도 거의 불편이 없을 정도로 실력이 늘어 있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매일 한두 시간씩 우리말을 공부한 결과다.

현재 한국토요타 사장인 나카바야시 히사오(中林尙夫) 씨도 부임 1년 만에 우리말을 약간 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봐서 현지어를 배우는 것이 도요타의 정책일 수는 있지만 떠난 지 거의 1년 만에, 앞으로 한 번도 못 볼지 모르는 한국 기자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도록 한 것은 회사의 정책이 아닐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회사에 진심으로 충성하는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했다고 본다.

그가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토요타가 판매하는 렉서스는 최고의 판매실적을 올렸으며, 도요타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발표했다. 국내 수입차업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회공헌을 하는 데도 그가 주도적인 역할도 했다. 이런 실적도 편지를 쓰는 그의 정성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뭐, 편지 한 통에 이렇게 호들갑스럽게 떠드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기자와 명함을 교환하고 숱한 대화를 나눴던 200명이 넘는 한국 기업의 임원들로부터는 이런 편지를 단 한 장도 받아보지 못했다. 물론 기자도 편지를 쓴 적이 없으니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번뜩이는 창의력과 정확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소중한 시대라지만 이런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더해진다면 기업의 경영성과는 더욱 좋아질지 모른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내 대기업 임원들이 과연 중남미나 중동 아프리카 시장 등에서 영어가 아니라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해당 국가에서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편지를 쓰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도요타의 성공도 지기라 씨 같은 직원들의 정성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아직도 그에게 답장을 하지 못한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편지지를 찾아봐야겠다.

석동빈 산업부 차장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