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정치부 차장
소말리아는 대표적인 ‘실패국가(failed state)’다. 1991년 무함마드 시아드 바레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 중앙정부는 통제력을 상실하고 군벌들이 득세했다. 내전과 학살, 기아, 범죄가 난무하는 무정부 상태가 20년간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말리아인 40만 명이 사망하고 140만 명이 살던 곳에서 쫓겨났으며 57만 명이 난민으로 인접국을 떠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의 골칫거리가 된 소말리아 해적도 그 뿌리는 실패국가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가 해안경비 능력을 상실한 뒤 소말리아 해역은 외국 선박들의 불법 조업과 독성폐기물 투기장으로 변해버렸다. 생활의 터전을 잃어버린 소말리아 어민들은 처음엔 바다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 무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자경(自警)조직은 어느덧 해적의 무리로 변했다.
실패국가에서 태어난 소말리아 청년들에겐 굶어 죽느냐, 해적이 되느냐 두 가지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청년들은 해적 조직이 내준 바퀴벌레가 우글거리는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AK-47 소총과 RPG-7 휴대용 로켓으로 무장한 이들은 생선을 날로 먹고 ‘카트’라는 환각 성분의 식물을 씹으며 먹잇감을 노린다. 해적질로 납치한 인질들의 몸값은 고스란히 군벌들의 금고로 들어간다.
소말리아의 현실을 보면서 북한의 미래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아프리카와 발칸반도 등 분쟁지역 전문가인 로버트 캐플런은 2006년 월간 애틀랜틱 9월호 기고문에서 북한 김정일 정권의 무기력 증세가 낳을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그는 북한이 자원 고갈과 인프라 마비 이후 당 관료와 군벌 세력이 지방에 ‘봉건영지’를 구축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의 북한을 실패국가로 규정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북한이 ‘실패로 가는 국가(failing state)’임은 분명하다. 북한은 합법적 폭력의 독점이라는 국가의 기능을 아직은 유지하고 있다. 주민들의 탈북과 밀무역이 갈수록 늘어나자 북한은 최근 중국과의 국경 곳곳에 철조망 장벽을 만드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또 다른 국가의 기능은 이미 작동을 멈췄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거리를 방황하는 꽃제비(부랑자를 뜻하는 러시아어 ‘코체비예’에서 유래)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고 한다.
이철희 정치부 차장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