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통령은 의회 연설을 잘 하지 않는다. 정부가 9월 정기국회 예산안을 제출할 때도 대통령 시정연설을 국무총리가 대독(代讀)하는 관행이 오래 이어져 왔다. 권위주의 시대부터 국회를 낮춰본 관행이다. 대통령은 국회연설 대신 신년연설이나 기자회견을 한다. 역대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사전에 질문자와 내용을 미리 조율하는 방식이었다. 기자들의 날선 질문으로부터 대통령을 보호하려던 독재정권의 잘못된 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새해에 거는 국민적 기대감을 의식한 행사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 달 1일 신년 방송 좌담회를 갖는다. 기자들은 아예 빠진 채 청와대의 기획으로 두 명의 토론자만 참석하고 주제도 ‘경제’와 ‘외교·안보’ 분야로 제한한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기자들과 치열한 일문일답을 벌이는 신년 기자회견을 한 적이 없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이 대통령 취임 후 있었던 20여 차례 기자회견을 통틀어 봐도 제대로 언론과 질의응답을 한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