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MBC)
얼굴 예쁜 여자가 귀엽고 사랑스러움까지 갖추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완벽한 미모에 어울리지 않게 허점이 많은 성격과 행동은 아닐까?
매사를 꼼꼼하게 따지면서 실속을 챙기는 것 같지만, 실은 맹탕에 가까운 '허당' 기질과 푼수 성향이 도드라지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예쁜 얼굴을 가졌다 해도 귀엽고 사랑스럽기는 어렵지 않을까? 혹시 언감생심 가까이 다가 갈 수 없는 존재라면 그 어떤 절세 미인도 그저 상상 속의 여신(女神)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만약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예쁜 척'을 하지 않아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미인이라면 어떨까?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감출 수 없는 허당 기질은 그녀를 친근한 존재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래서일까?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히로인은 완벽한 미모를 자랑하지만 살짝 망가질 줄 아는 매력이 돋보이는, 그래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들이 많다.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표방한 '마이 프린세스'의 히로인 이설(김태희 분)은 일제에 의해 치욕적으로 소멸된 대한제국 황실을 재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주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대한제국 황세손의 딸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기 전까지 그녀는 그저 마음씨 고운 아주머니 덕분에 고아원에서 입양돼 성장한 여대생일 뿐이었다. 완벽한 미모 덕분에 공주라고 생각한 적은 있어도 어려서 헤어진 아버지가 대한제국의 황세손이었으며 자신이 진짜 공주라는 사실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녀가 단순히 얼굴만 예뻤다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히로인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고아원에서 자신을 입양해 키워준 양어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하는 밝고 긍정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와 헤어지면서 받은 상처가 여전한 그녀가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고아를 데려다가 친자매처럼 키운 양어머니 김다복(임예진 분)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양언니 이단(강예솔 분)과의 갈등도 있었다. 말썽 한 번 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지만 양 부모님의 관심은 언제나 말괄량이 같은 이설에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니에게 구박도 많이 받지만 언니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게 명랑소녀 이설의 성격이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여관방에서 자다 말고 아버지 손에 이끌려 도망치다가 금방 데리러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그녀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사진출처=MBC)
한없이 밝고 쾌활한 모습 속에 스미어 있는 그녀의 슬프고도 어두운 표정은 영문도 모른 채 헤어진 아버지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비롯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십 수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금방 데리러 오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갖고 있기에 그녀는 오늘도 열심히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설계한다.
그래서 그녀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학교 행정실에서의 아르바이트는 기본이고 타고난 외모를 이용해 웨딩 촬영 아르바이트와 고궁에서 외국인 관광객 기념 촬영용 사진 모델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답사여행용 가방을 구입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귀엽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아르바이트 시간에 쫓겨 바쁘다고 소리 지르다가 외국 공주와의 사진 촬영 한 번에 10만 원을 주겠다는 외교관 박해영(송승헌 분)의 제안에 방긋방긋 미소 지으며 다소곳하게 자세를 잡는 모습이나, 사은품을 탈 수 있는 600만 원짜리 영수증을 챙기기 위해 득달같이 박해영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유는 월등히 뛰어난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성격과 행동 때문이다.
물론 짝사랑에 빠진 주제에 박해영에게 연애의 공식인 '밀당', 즉 '밀고 당기기'를 코치하는 모습도 유쾌한 웃음을 자아내기는 마찬가지다.
철없는 소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말괄량이 같지만 그녀도 짝사랑하는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남정우(류수영 분)'에게만큼은 우아하고 품위 있는 숙녀로 보이기를 희망한다. 고고학개론 강의 시간에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남정우 교수와 함께 이집트 답사 여행을 하면서 미이라 관속에 숨어 장난치는 상상을 하며 신나하는 그녀의 행동은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에 빠져 꿈을 꾸는 20대 여성의 모습 그 자체이다.
박해영 앞에서 지독하게 짠순이 노릇을 하던 그녀가 남정우 교수 앞에서만큼은 애교 넘치는 여성으로 돌변하는 것은, 그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일 뿐이다. 평소 뛰어난 능력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해영박물관 관장 오윤주(박예진 분)가 박해영과 남정우 교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그녀가 오윤주에 대한 존경심을 버리고 길길이 날뛰는 행동도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타고난 미모에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한 그녀도 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 앞에서는 그저 철부지 어린 소녀였다. 반드시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던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들은 그녀가 대성통곡을 하며 우는 모습은 연민을 자아낸다.
하지만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법! 언젠가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 그녀는 소녀에서 여성으로 성장하면서 비로소 세상과 맞서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철부지 소녀에서 이제 정말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어른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테이크를 먹다가 배탈이 나서 숙녀의 체면은 뒷전으로 팽개친 채 엉덩이를 감싸 안고 화장실로 뛰어가는 푼수 같은 행동도, 공주가 갖춰야 할 기본 시사 상식 시험에서 0점을 맞고도 억지를 부리는 허당 같은 모습도 이제는 모두 잊어야 한다. 그녀는 이제 재건될 황실을 대표하는 공주님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는 고아원에서부터 세상 그 누구도 자기편이 아니라는 것을 체득할 정도로 애늙은이 같은 면모를 갖고 있다. 밝고 쾌활한 성격과 행동의 이면 속에 감춰진 어둠의 그늘이 어린 그녀를 일찍 철들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황실 재건을 반대하며 '고아원 출신의 입양아'라는 성장 환경을 문제 삼아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오윤주에 맞서 당당하게 스스로 공주임을 선언한다. 그리고 황실 재건을 위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한 할아버지 때문에 하루아침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된 박해영에 대한 미안함을 저버리고 적극적으로 황실 재건에 나선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히로인답게 박해영과의 로맨스도 완성한다.
(사진출처=MBC)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미모에 밥과 고기, 그리고 소주라면 열 일 제쳐둘 정도로 환장하는, 털털하면서도 푼수 같은 허당 기질이 더해지면서 생성된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진짜 매력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덧붙여져야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서는 아직 그러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금방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그러면서도 짝사랑하는 교수님과의 달콤한 로맨스를 꿈꾸며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에 빠질 정도로 대책 없는 순수함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충돌하는 상황에서 '공주'로서의 위엄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은 것이 있다면, 완벽한 미모와 어울리지 않는 세속적인 언사와 망가짐의 단순 반복에서 비롯하는 헛웃음뿐이다.
보기만 해도 마냥 좋은, 완벽한 미모의 공주 이야기가 달달해서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현실과 완벽하게 괴리된 듯한 극적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공주'는 누군가의 조종을 받아야만 움직이는 '인형'일 수밖에 없다.
대한제국 황세손의 딸이자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공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엔 이설은 그저 인형에 지나지 않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 바탕 즐겁게 웃으며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라고 하기엔 현실 정치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문득, '마이 프린세스'의 이설 공주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정치적 존재일까 궁금해진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드라마평론가 drama@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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