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이제 기성복서 맞춤복 시대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오른쪽)이 31일 취임 후 첫 현장방문지로 시스템반도체 설계회사인 TLI를 찾았다. 최 장관은 “앞으로 시스템반도체 인력 양성 및 업체 대형화를 집중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제공 지식경제부
회사 안에 들어가서도 의아함은 계속됐다. 삼성전자 같은 반도체공장 풍경을 상상했지만 그 안엔 거대한 생산설비도, 얼굴만 내놓은 하얀 옷차림의 연구원들도 없었기 때문. 그 대신 대학생 같은 캐주얼 차림의 직원 100여 명이 그저 책상에 놓인 두 개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복잡한 설계도와 수식을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한눈에 봐도 가진 것은 ‘머리’와 ‘책상’뿐인 이 회사는 그러나 2009년 한 해 동안 1000억 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렸다. 정만기 지식경제부 정보통신산업정책관은 “이것이 팹리스(fab-less·공장이 없는) 기업의 힘”이라고 말했다.
시스템반도체는 대량 일괄생산이 가능한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각 제품에 맞는 반도체를 사람이 일일이 설계해야 한다. TLI의 경우에도 직원의 60% 이상이 전자공학을 전공한 석박사급 인재들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시스템반도체는 ‘인재 중심’ 산업인데 반도체 설계 역량이 있는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이런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교수조차 우리나라를 통틀어 30명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반면에 세계적 팹리스 기업으로 유명한 미국 퀄컴사의 경우 반도체 설계 인력만 1만3000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한국의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점유율은 50%를 넘지만 시스템반도체 시장점유율은 3%에 그친다. 시스템반도체 역량이 없다 보니 국내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스마트폰, 자동차 등에도 수입 반도체를 장착하는 실정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지난해 한국은 메모리반도체를 수출해 285억 달러(약 32조 원)를 벌었지만 이 중 186억 달러가 시스템반도체를 수입하는 돈으로 다시 빠져나갔다”고 했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들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시스템반도체 사업부를 집중 지원하고 있다”며 “특히 이재용 사장이 시스템반도체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최중경 지경부 장관은 이날 취임 후 첫 현장방문지로 TLI를 찾아 “시스템반도체 역량이 높아져야 진정한 반도체 강국”이라며 “향후 시스템반도체 인력 양성 및 업체 대형화를 집중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 시스템반도체 ::
메모리반도체가 정보 저장에 이용되는 데 반해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는 중앙처리장치(CPU)처럼 정보 처리를 목적으로 한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첨단 디지털 기기의 ‘뇌’에 해당하는 반도체로 최근 그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