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이집트의 창에 어른거리는 북한
이집트는 이미 5000년 전에 문명의 절정기를 누렸고 4600년 전에 피라미드를 쌓기 시작했다. 2000년도 더 전의 그리스계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아직도 사랑과 전쟁의 로망으로 세계인의 상상 속에 살아있다. 그러나 진짜 살아있는 이집트 대통령 무바라크는 ‘독재 타도’를 외치는 국민저항 앞에서 퇴진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무바라크는 평양의 김일성 김정일 부자(父子)를 보고 용기를 얻었는지 차남 가말(48)을 후계자로 세우는 준비를 몇 년 전부터 해왔다. 그러나 권력세습설이 떠오른 2004년 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 부자를 겨냥한 ‘키파야(Kifaya·이제 그만!)운동’이 고개를 들었다. “20여 년의 장기집권으로 충분하니 더는 안 된다”는 뜻의 시위 구호였다. 무바라크가 그때나마 1인 독재와 세습 욕심을 버리고 이집트에 민주주의의 싹을 틔웠더라면 지금 성난 국민 앞에서 떨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김일성과 친하게 지낸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1918∼1989)는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으로 떠받드는 평양 사람들의 우상숭배를 부러워한 나머지 ‘김일성 주석궁’보다 더 화려한 ‘차우셰스쿠 궁전’을 부쿠레슈티에 짓고, 아들 니쿠에게 권력을 이양할 계획을 추진했다. 이 궁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건물이 됐지만 차우셰스쿠는 궁이 완공되기도 전에 시민혁명을 불러들였고, 혁명이 일어난 지 열흘도 안돼 부인과 함께 체포돼 국민경제파탄 및 대학살 죄목으로 총살형에 처해졌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차우셰스쿠 일가의 비참한 최후를 비롯해 동유럽 공산정권의 붕괴 도미노, 서독의 동독 흡수통일 등을 보면서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 부자는 한편으로는 ‘남북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를 얻어내는데 매달렸고, 그 막후에서는 핵개발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했다.
강한 듯한 獨裁, 갈땐 한 방에 간다
혹자는 이집트처럼 휴대전화도,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없는 북한에서 주민들이 세계를 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더구나 불온한 눈빛만 보여도 가족까지 몰살시켜버리는 북한에서 민주화의 꽃이 피기는 힘들 것이라고 비관한다.
그러나 아무리 모진 김정일 집단도 2400만 주민의 눈과 귀를 완전히 틀어막지는 못할 것이다. 이집트 이동통신회사 오라스콤은 2008년 12월 지분 75%로 ‘고려링크’를 설립해 북한에서 휴대전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 가입자는 어느덧 3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김정일 정권에 양날의 칼이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한국 유행가가 불리고, 일부 여성들이 송혜교 헤어스타일을 흉내낸다는 얘기는 북한 주민들이 귀와 눈을 막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노무현 정부가 대북(對北) 심리전을 중단하기 전, 우리 군이 철책선 너머로 확성기 방송을 했을 때는 귀순하는 북한군도 적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때로 혼란스럽고 취약점을 보이지만 국민이 자유선거를 통해 선택한 정부는 독재정권보다 훨씬 강하다. 독재체제는 철통같지만 무너질 때는 한 방에 간다. 공포의 보안기구나 군부 같은 체제유지 장치는 한순간에 체제를 뒤엎는 수단으로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