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땐 포스트시즌·설날은 전지훈련…결혼 6년 동안 함께한 명절은 딱 한번”
두산 임재철(왼쪽)의 아내 최경선(오른쪽) 씨는 민족 대명절인 설날에도 혼자다. 하지만 늘 챙겨주는 시부모와 든든한 남편이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임재철의 딸 지유가 설날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깜찍한 표정을 짓고 있다.(왼쪽 작은 사진) 사진 | 최경선 씨 미니홈피
‘내조의 여왕’ 두산 임재철 아내 최경선씨의 설
“그래도 한결같이 아껴주시는 시부모님, 설엔 귀여운 손녀 재롱 보여드려야죠”
야구선수가 서는 마운드, 타석은 외로운 자리다. 2-2로 팽팽하게 맞선 9회말 2사 만루 풀카운트 상황. 투수는 오로지 자신을 믿고 공을 던져야 하고, 타자 역시 스윙 하나에 승패가 갈리는 만큼 신중하게 방망이를 휘두른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도, 그라운드 위에서 치열하게 싸우지도 않지만 한 선수를 위해 뒤에서 묵묵히 받침목이 돼주는 사람. 곁에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있는 시간이 더 많아도 불평 한 번 하지 않는 사람.
혹 신경 쓸까 자신이 아픈 것은 무조건 숨기는 사람. 명절 때 가족끼리 단란하게 모여 설을 쇠는 평범한 생활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인, 그게 바로 ‘야구선수 아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다.
두산 임재철의 아내 최경선(34) 씨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다. 최 씨는 결혼 6년차지만 남편과 명절을 함께 보낸 횟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추석은 포스트시즌, 설날은 전지훈련 일정과 늘 겹쳤다. 남편 손을 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시댁에 인사를 간 것은 2005년 12월 결혼식을 올린 직후 돌아온 설날. 하지만 그게 남편과 함께 한 처음이자 마지막 설의 추억이 되고 말았다.
시어머니는 “힘든데 오지 말라”고 극구 말렸지만 30여 년간 야구선수 아들을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신 시부모에게 이럴 때라도 찾아뵙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손녀 지유를 금이야 옥이야 아껴주는 시부모님을 위해 예쁜 설빔도 마련했다.
하지만 최 씨는 막상 시댁에 가도 며느리가 아닌 친정집에 온 딸과 같은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설거지라도 거들라치면 “가만히 들어가 쉬라”며 시어머니가 먼저 몸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시댁에 오래 앉아있지도 못한다.
“먼 길 와 피곤하다. 얼굴 봤으니 길 밀리기 전에 집에 빨리 가라”며 성화인 시부모 때문에 급히 인사만 드리고 당일치기로 집에 돌아오기 일쑤다. 아무래도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홀로 아이를 키우고, 불편할 수밖에 없는 시댁을 홀로 찾아오는 며느리가 안쓰럽기만 할 터.
반대로 최 씨는 며느리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늘 죄송한 마음 뿐이다. 그나마 지유가 살살 녹는 애교와 재롱으로 아빠, 엄마 몫까지 시부모를 즐겁게 해드리는 게 유일한 마음의 위안이다.
최 씨를 챙기는 것은 비단 시부모뿐 아니다. 임재철도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 때문인지 틈만 나면 시댁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힘든데 얼른 집에 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럴 때면 옆에만 있어도 든든한 남편의 빈 자리가 느껴지곤 한다.
그래도 최 씨는 “나는 행운아”라고 했다. “어머니, 아버지, 남편이 모두 나를 끔찍하게 챙겨준다. 몸둘 바를 모를 정도”라며 웃었다. 또 임재철은 처가식구들도 살뜰히 챙기며 아내를 기쁘게 하고 있다. 작은 일도 세심하게 챙기는 사위 때문에 최 씨 친정어머니는 “재철이 같은 ‘아들’이 있어서 든든하고 좋다”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문득문득 외로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하고 있는 최 씨. 이번 명절도 어김없이 혼자지만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단단히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행복하다.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