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력진압 않겠다” 선언 왜
시위대에 손 내미는 군인 1일 이집트 카이로 도심 타흐리르광장에 집결한 시위대를 향해 탱크 위의 한 군인이 손을 내밀고 있다. 이날 오후 2시 현재 광장에는 20만 명이 넘는 시위대가 운집했지만 광장에 주둔하고 있는 군과의 충돌은 아직 없다. 카이로=AFP 연합뉴스
왕정이 폐지된 1952년 이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포함해 ‘이집트 아랍 공화국’ 대통령에 오른 4명은 모두 군인 출신이다. 이집트 군부는 차기 대통령 감으로 주목받은 장교를 일단 부통령 자리에 앉혀 ‘후계자 수업’을 받게 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이어왔다. 무바라크 대통령 역시 공군 참모총장 출신으로 무함마드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지내며 차례를 기다렸다.
군사 정권은 언론 역시 철저하게 통제했다. 군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다. 군에 부정적인 기사는 어느 매체에도 실리지 못하게 했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2006∼2007년 카이로에서 공부한 에릭 트레저 씨는 지난달 30일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 인터넷판에서 “이집트에서 군이 준(準)신화적 지위를 얻게 된 건 군에 대한 비판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 방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우산’에서 벗어나는 것도 이집트 군부는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집트 장교들은 미국 사관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 30년이 넘은 전통이다. 이집트 군이 도로 건설, 주택사업, 리조트사업 같은 이권 사업에 개입할 수 있는 것도 미국의 묵인이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 군이 시위대와 충돌 없이 경계 활동을 유지하자 마이크 뮬런 미 합참의장은 “프로페셔널한 행동”이라고 추켜세웠다. 잘못된 선택으로 이 같은 동맹 관계가 무너지면 이집트 군만 손해다.
인터넷 매체 허핑턴포스트는 이번 선언을 두고 “집권 연장을 바라는 이집트 군과 이집트에서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같은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이집트에서 군부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국 역시 중동 평화의 ‘안전판’을 잃게 된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