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아시아축구 우승 주역’ 이충성의 아버지 이철태 씨
아시안컵 합숙 훈련을 앞두고 이충성 선수의 가족이 1월 1일 신년 가족모임을 가진 모습. 앞줄 오른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충성 선수, 아버지 이철태 씨. 남동생 장성 씨, 어머니 정유미 씨. 사진 출처 이충성 선수 블로그
일본 가나가와(神奈川) 현 미우라(三浦) 시에 있는 수족관 ‘게이큐 아부라쓰보 마린파크’가 1일부터 일본의 아시안컵 우승을 기념해 이색 이벤트를 시작했다. 재일교포 4세로 일본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한 이충성(李忠成) 선수의 일본 이름인 ‘리 다다(忠)나리(成)’의 발음만 따지면 ‘리(이씨)+다다(무료)+나리(된다)’라는 점에 착안한 무료입장 서비스. 호주와의 결승전에서 통쾌한 발리슛으로 대스타가 된 이 선수의 인기가 요즘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1일 니시도쿄(西東京) 시에서 만난 이 선수의 부친 철태 씨(53)는 “30일 경기 이후 사흘 동안 수백 통의 격려전화를 받고 방송 출연도 하느라 총 5시간밖에 못 잤다”며 “마치 거대한 쓰나미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재일교포 3세인 그에게 아들의 결승골은 기쁨 이상의 각별한 의미가 있어 보였다.
“일본에는 아직도 재일교포가 왜 일본에 남아 있는지 역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안다고 해도 ‘재일교포=가난, 폭력’과 같은 부정적인 편견 일색이죠. 이런 편견을 깨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를 한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는 일본 사회에서 재일교포는 ‘도로에 핀 민들레 같은 존재’라고 했다.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애매한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에 남들보다 갑절 이상의 노력으로 출중한 실력을 갖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들이 축구를 시작한 4세 무렵부터 “차별에 대해 불평하기 전에 실력부터 갖출 것”을 끊임없이 주문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씨는 인터뷰 내내 아들의 일본 국적 취득이 부담스러운 듯 누차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고 했다. 이 선수는 2007년 귀화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 국가대표 선수로 뛰었다. 그는 “아들이 귀화를 해서 일본 대표선수가 됐지만 한국인임을 알 수 있는 이씨라는 성을 당당히 밝히고 있다”며 “축구 선수로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선택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독일 국가대표 선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크로제, 포돌스키, 슈바인슈타이거 등도 모두 폴란드 출신”이라며 “재일교포라고 해서 막연히 핏줄이나 민족을 강요하기 전에 재일교포 입장에서도 한 번쯤 생각해 달라”고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이 선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른 행사 때문에 (인터뷰장에) 직접 오지 못해 죄송하다”며 “전화로라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쾌활하고 힘이 있는 목소리였다.
“재일교포 축구선수들에게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일본 이름으로 일본 프로팀에서 뛰는 선수도 있고, 한국식 이름으로 북한 대표로 활약하는 선수도 있어요. 다들 자기 앞에 놓인 많은 길들 가운데 제일 잘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고 가능성을 넓혀가는 게 우리의 할 일입니다. 저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엄마 아빠의 가르침을 받으며 한국 문화 속에서 자랐습니다. 일본 국가대표 선수지만 내 몸속에는 여전히 코리안으로서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니시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