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주고받은 16명 조사
“일본의 자랑, 스모(相撲)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타락했나.”
일본 전통씨름인 스모가 선수들의 승부조작 비리로 얼룩졌다. 지난해 6월 스모 선수들의 야구도박 사건에 이어 또다시 추문이 터지자 스모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일본스모협회마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다음 달로 예정된 봄 대회를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정기대회가 중지된 것은 국기관(도쿄 스모장) 보수 공사로 대회가 열리지 않은 1946년 이래 65년 만이다.
승부조작 혐의로 스모협회의 자체 조사를 받던 현역 스모선수 지요하쿠호(千代白鵬) 등 선수 2명과 지도자 1명은 2일 “고의로 져주고 수십만 엔(수백만 원)씩의 사례금을 주고받았다”고 실토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들은 경기 당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경기 시나리오를 짜고 철저히 이에 따라 움직였다. 팬들이 고의로 져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치열한 몸싸움을 연출해 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승부조작 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스모선수는 이들을 포함해 총 16명이나 돼 충격을 주고 있다. 스모협회 특별조사위원회는 현재 이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조사하고 있다. 하나레 고마(放駒) 일본스모협회 이사장은 4일 기자회견에서 “팬들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신뢰의 문제”라며 다음 달 13일로 예정된 봄 대회의 개최 불가 방침을 밝혔다.
일본 언론은 “일본 국기(國技)가 존망의 위기에 빠졌다”며 스모계의 잇따른 추문을 강하게 성토하고 있다. 일본 스모계는 지난해 스모선수와 지도자 60여 명이 무더기로 야쿠자(조직폭력배)와 관련된 야구도박 등에 관여한 것이 탄로나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이번 휴대전화 승부조작 사건도 일본 경찰청이 이 사건을 수사하던 과정에서 불거졌다.
스모 전문가인 나카지마 다카노부(中島隆信) 게이오대 교수는 “승리보다 패배가 많아지면 선수생활을 접어야 하는 스모계의 특성 때문에 선수들끼리 승부를 조작해 선수생명을 늘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