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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같았던 146시간” 삼호주얼리호 피랍부터 구출까지

입력 | 2011-02-06 03:30:00


146시간(6일 2시간). 삼호주얼리호가 해적에게 피랍된 순간부터 청해부대가 해적을 모두 무력화하고 선원들을 안전하게 구출할 때까지의 시간이다. 선원들은 모두 "지옥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석해균 선장(58)과 선원들은 지혜를 모으고 기지를 발휘했다. 피랍부터 구출까지. 선원들의 진술과 국방부 발표 등을 토대로 삼호주얼리호 안에서 벌어졌던 상황을 시간 흐름에 따라 재구성했다. 시간은 모두 선상시간(船上時間)으로 표시했다.

● 비상벨 울리며 "해적이 옵니다."

15일 오전 7시 반경. 삼호주얼리호 선원의 일과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김두찬 갑판장(61)이 갑판부 선원을 모두 모아놓고 이날 할 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당직근무 일정을 전달할 때 쯤 갑자기 비상벨이 울렸다. 이 때만 해도 선원들은 '해적'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불났나 보다." 김 갑판장은 서둘러 선원들을 선내 곳곳으로 보냈다. 하지만 선실을 비롯한 실내에는 이상이 없었다. 기관실에서도 연기는 물론 타는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순간 당직근무를 서던 이기용 1등항해사(46)의 다급한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렸다. "해적입니다."

당시 삼호주얼리호의 위치는 아덴만. 소말리아 해안에서 동북쪽으로 2000㎞ 떨어진 곳이었다. 두 달 전 약 950만 달러(약 106억 원)를 주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던 같은 회사 소속 삼호드림호는 지금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1200㎞ 지점에서 납치됐다.

일단 몸을 숨겨야 했다. 혹시라도 해적들이 기어 올라오는 데 쓰일까봐 눈에 보이는 모든 로프를 챙겨 대피소에 몸을 숨겼다. 1항사가 이동용 무전기를 이용해 대피소 구조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청해부대는 너무 멀리 있어서 답이 오지 않았다. 그나마 답신을 보낸 배도 너무 멀리 있었다.

대피소로 숨어들기 전 정만기 기관장은 해적들이 배 오른쪽 중간 정도 지점에 사다리를 걸고 올라오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 작은 고속정을 삼호주얼리호 옆에 바짝 붙인 이들은 능숙하게 사다리를 걸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배수량이 1만2000t에 육박하는 벌크선에 작은 고속정을 갖다 붙이는 솜씨도, 출렁이는 배에 사다리를 걸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배를 장악하는 솜씨도 '프로급'이었다. 첫 해적이 올라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해적을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20분도 채 안 됐다.

오전 8시 반 정도 되자 우르릉거리던 엔진소리가 사라졌다. 해적들이 엔진을 끈 모양이다. 잠시 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충격을 받은 듯 흔들렸다. 해적 모선(母船)이 접안한 것 같았다. 대피소에 숨은 선원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잠시 후 대피소 바깥에서 알 수 없는 외국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조타실을 비롯한 선실을 샅샅이 뒤져 대피소를 찾아낸 것. 하지만 육중한 철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화가 난 해적들은 바깥에서 총을 쏘아대기도 했다.

문은 3시간여 만에 열렸다. 주로 쓰는 출입문 외에 평소에는 막아놓는 동그란 출입문을 쇠파이프를 꽂아 젖히고 열었다. 하나, 둘, 셋… 해적 13명보다 먼저 선원들의 눈에 들어온 건 총 13정이었다. 해적 모두 총 한 자루씩을 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휴대용 로켓포 RPG-7과 기관총도 눈에 띄었다. 해적들은 복잡한 AK소총을 1분 안에 모두 분해·조립해 낼 만큼 개인화기를 능숙하게 다뤘다.

삼호주얼리호를 장악한 해적들은 양말에 칫솔까지 선원들의 물건을 모두 빼앗는 '노략질'을 시작했다. 선원들에게 둘째 날부터는 두 끼를, 셋째 날부터는 한 끼만 먹도록 했다. 선원들끼리 얼굴을 마주보고 한국말로 대화만 해도 주방용 칼을 들이대며 협박을 했다.

● 청해부대와 선원들이 양공 펼친 1차 교전

피랍 2일째인 17일 오후 11시경. 삼호주얼리호는 최영함과 만났다. 해적들은 삼호주얼리호를 모선으로 해 근처에 있는 몽골 선박을 납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약 15시간가량이 지난 18일 오후 2시 반경. 해적들은 김 갑판장에게 자신들의 고속정을 바다에 내릴 것을 지시했다.

김 갑판장의 기지는 여기에서 빛났다. 삼호주얼리호에서 크레인을 이용해 자선(子船)을 바다로 내려주는 역할을 하던 김 갑판장은 해적들이 고속정을 내리라고 명령했을 때 '해적들을 바다에 빠뜨리고 고속정도 침몰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선을 내릴 때는 모선을 정지시켜야 하지만 갑판장은 삼호주얼리호를 정지시키지 않은 채 해적 5명이 탄 고속정을 그대로 바다에 내렸다. 김 갑판장의 생각처럼 배가 뒤집히지는 않았지만 고속정엔 기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이 들어찼다. 해적들이 배에 찬 물을 퍼내는 사이 해적의 기동을 눈치 챈 최영함에서 링스헬기가 떠올랐다. 해적들은 고속정을 버리고 허겁지겁 삼호주얼리호로 올라왔다.

반면 모선에서 돌아가는 상황은 심상치 않았다. 해적 중에서도 무기를 가장 능숙하게 다루던 두목 오디 아비사르(28)는 최영함에서 내린 고속단정 두 척이 삼호주얼리호로 접근하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재빨리 기관총을 장전한 두목은 해군 고속정이 사정거리에 들어오길 기다렸다. 선원들이 옷을 벗어 흔들며 해군 고속정에 신호를 보냈지만 해군은 이 신호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 청해부대 고속정이 삼호주얼리호로 접근하자 두목이 들고 있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고속정은 급히 방향을 틀어 양 쪽으로 갈라졌지만 이 과정에서 두목이 쏜 총에 부대원 세 명이 부상을 당했다. 1차 구출작전은 실패했다.

잇따른 선원들의 행동에 화가 난 해적은 폭력적으로 변했다. 석 선장에게는 수시로 개머리판이 날아들었다. 갑판장이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자 난데없이 팔꿈치를 날려 앞니 3개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주변에 배가 있을 때는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한국 선원들끼리 서로 소통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선장에게는 밥을 주지 말라는 명령도 뒤따랐다. 이번엔 정상현 조리장(57)이 활약했다. 다른 해적들보다 상대적으로 순하고 함께 조리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해적 압둘라 시룸을 설득해 식사시간이 끝난 후 석 선장의 끼니를 몰래 챙겨줬다.

● 2차교전-선장을 쏜 아라이

구타와 감시 속에서 또다시 이틀을 보냈다. 피랍 7일 째인 21일 새벽 4시 58분. 조타실에서 쪽잠을 자던 최진경 3등항해사(25)는 헬기소리와 총소리를 듣고 놀라서 잠을 깼다. 조타실 멀리서 빛줄기가 삼호주얼리호를 향해 휙휙 날아들었다. 예광탄(曳光彈) 궤적이었다. 해는 뜨지도 않은 어둠 속이었다. 피랍 기간 내내 선원들을 가장 많이 괴롭힌 무함마드 아라이(23)가 조타실에서 함께 자던 석 선장과 김 갑판장, 손재호 1등기관사(53) 등을 모두 일으켜 세워 총알이 날아오는 곳에 세웠다. '인간 방패'를 만든 것. 최 3등항해사와 이기용 1등항해사(46)는 다른 해적들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끌려 나갔다. 총알이 '퓽 퓽'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스쳐갔다. 엄청난 폭음 사이로 한국말이 들렸다. "선원은 모두 엎드리세요!" 아라이의 협박보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석 선장과 선원들은 해적들이 잠을 자기 위해 조타실에 가져다놓은 매트리스를 뒤집어쓰고 납작 엎드렸다.

그 때부터 해적 중 한 명이 갑자기 "캡틴 캡틴"을 외치기 시작했다. 매트리스를 하나하나 들추던 해적은 석 선장과 김 갑판장이 함께 뒤집어쓰고 있던 매트리스를 뒤집은 뒤 김 갑판장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발로 차버렸다. 발에 채여 나뒹굴던 김 갑판장은 이 해적이 옆에 있던 석 선장을 확인한 후 총을 쏘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 "따·따·따·따" 네 번의 총성이 울렸다. "뚜뚜뚜"에 가까운 한국군의 총소리와는 확연히 구분됐다. '누군가 선장에게 총을 쐈구나.' 직접 보진 못했지만 정 조리장의 몸에도 소름이 돋았다.

해적이 총을 쏘는 순간 엎드려 있던 선원 한 명이 조타실 바깥으로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손 기관사였다. 그는 기관실로 부리나케 달렸다. 머릿속엔 '엔진을 꺼야 우리가 산다'는 생각뿐이었다. 손 기관사가 엔진을 정지하는 순간 배에 설치된 비상발전기가 작동하면서 조타실 실내에 불이 들어왔다. 주변이 밝아지자 해적의 윤곽만 보였던 김 갑판장의 눈에 해적의 얼굴까지 똑똑히 들어왔다. 역시 아라이였다.

●146시간보다 길었던 5시간

밖으로 끌려 나가던 이 1항사와 최 3항사 역시 총격이 심해지자 납작 엎드린 채 화장실로 숨어들어갔다. 최 3항사의 머리 속에 부모님과 여자친구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두 사람은 다시 해도(海圖)실로 숨어들어갔다. 석 선장과 김 갑판장이 있던 조타실이나 해도실은 철판이 2, 3중으로 되어 있고 나무 벽까지 설치된 곳이어서 총알이 뚫고 들어올 수 없는 안전한 곳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총소리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데 시간은 멈춰버린 것 같았다. 그 때 정상현 조리장의 귀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해적 발자국 소리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우리 군이다.' 발자국이 아주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귀를 찢는 듯 한 총소리가 몇 발 더 들렸다. 마지막 총소리였다. 이후 더없이 반가운 한국말이 들렸다. "한국 해군입니다. 한국 선원들 나오세요."

김 갑판장을 뺀 다른 선원들은 석 선장이 아라이가 쏜 총에 맞았다는 사실을 몰랐다. 선원들의 마음이 놓이기도 전에 갑판장은 청해부대원들에게 "선장이 총에 맞았다"고 외쳤다. 곧바로 도착한 의무병이 석 선장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 다음 석 선장은 미 해군 헬기로 긴급 후송됐다. 상황 종료. 선원들은 그제서야 함교 문을 열고 나와 아덴만의 아침햇살을 만끽했다. 피랍 146시간, 작전개시 4시간 58분 만에 맞는 '자유의 빛'이었다.

부산=윤희각기자 toto@donga.com
부산=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