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동(靜中動)이냐, 동중동(動中動)이냐.’ 내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큰 판’을 앞둔 여야 대선 잠룡(潛龍)들의 설 연휴는 9인9색이었다. 복지정책, 주민투표, 개헌 등 저마다의 화두를 움켜쥐고 민심의 파고를 넘기 위해 전략을 구상하거나 논리를 전파하느라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다. 대선 예비주자들의 설 연휴와 향후 행보를 살펴봤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서 가족들과 함께 설 연휴를 보냈다. 59번째 생일인 2일에는 자택으로 동생 지만 씨 가족을 초대했다. 이에 앞서 1일 밤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린 새해 인사글에서 “올해는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평창으로 선정돼 국민 모두 기쁨을 나눌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박 전 대표가 평창을 응원한 데 대해 정치권에선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의 지사직 상실에 따라 흔들리는 강원도 민심을 다독이는 한편 4·27 재·보선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요즘 오세훈 서울시장의 관심은 온통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에 쏠려 있다. 설 연휴 기간도 한나라당의 서울지역 당협위원장들을 만나 주민투표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설 이후에는 각계 원로지도자들을 만나 주민투표 지지를 요청할 계획이다. 복지 자체를 반대한다는 이미지를 씻기 위해 서민복지 정책은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4일에는 1970년대 산동네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연극 ‘장석조네 사람들’을 관람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연휴 동안 누구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2일에는 수원에서 택시기사로 변신했다. 24번째 택시운전이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8시간 운전해 15팀을 모셨는데 (사납금을) 입금하고 1000원이 남았습니다. 적자지요”라고 적었다. 4, 5일 최전방 접경지역인 파주시 대성동마을에서 1박 2일을 보내며 ‘대성동의 밤’이라는 자작시를 지어 공개했다. 5일엔 또 경기 안산시 원곡본동 ‘국경 없는 마을’에서 외국인 근로자들과 시간을 보냈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1일 신년 방송좌담회에서 “올해가 개헌의 적기”라고 밝힌 뒤 한껏 고무됐다. 정치인 중 유일하게 4일 기자들에게 서울 은평구 구산동 자택을 개방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개헌 분위기를 잘 만들어 달라”고 했다. 6일 당내 대표적 친이(친이명박)계 모임인 ‘함께 내일로’의 2차 개헌간담회, 8일 한나라당의 개헌 의원총회에 잇따라 참석할 예정이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설 연휴 강원 평창군 용평리조트에서 가족들과 모처럼 시간을 보냈다. 6일은 지역구인 서울 동작구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남성시장을 찾을 예정이다. 2월 임시국회에서는 외교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 나서는 등 강점인 외교안보 역량을 부각시킬 계획이다. 3, 4월경에는 프랑스 석학인 기 소르망,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교수 등과의 대담집도 출간할 예정이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설 연휴 공식 일정 없이 강원 인제군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2월 임시국회, 영수회담, 4·27 재·보궐선거 등 각종 현안과 관련해 수시로 참모들과 통화하며 설 이후 전략을 짠 것으로 알려졌다. 손 대표는 2007년 3월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도 백담사를 찾은 적이 있다. 영수회담과 관련해서도 여러 구상을 하고 있다고 박지원 원내대표가 전했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설 연휴를 지역 활동과 노동문제를 공부하는 데 할애했다. 1∼3일 지역구인 전북 전주의 아동·노인 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한 데 이어 순창에서 구제역 방역활동에 참여했다. 외부 일정이 없을 때는 ‘양극화 시대의 일하는 사람들’을 비롯한 노동 관련 서적을 읽었다. 6일에는 홍익대 청소원 노동조합을 방문한다. 노동조건 개선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한다.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은 연휴 내내 서울에 머물며 대선 캠프 역할을 하게 될 재단 설립 준비에 전념했다. 지역구인 전북 무주-진안-장수-임실 지역은 구제역 확산 우려 때문에 방문하지 않았다. 정 최고위원 측은 “당 대표로 일한 2년 동안 자신의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만큼 대선행보를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재단은 이달 중 준비위원회를 발족해 다음 달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지난달 26일 당권 도전을 선언한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은 연휴 동안 경기 고양시 덕양구 자택에서 집필 작업에 몰두했다. 지난해 말부터 동서고금의 국가론과 진보자유주의 체제에서 국가의 역할을 담은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가제)란 책을 집필 중이다. 4월경 출간 예정이다. 그는 다음 달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선출이 유력한 만큼 4·27 재·보선 등 정치현안에 대해서도 구상을 가다듬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