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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선원들 한데 묶은건 ‘선장의 쪽지’였다

입력 | 2011-02-06 03:00:00

● 삼호주얼리호 갑판장-조리장이 귀국해 전한 ‘무사구출 수훈갑’




“할아버지, 지옥에서 돌아왔습니다” 해적에게 납치됐다 구출된 삼호주얼리호 최진경 3등 항해사(왼쪽)가 설날인 3일 전남 화순군 동복면의 조부모 묘소를 찾아 아버지 최영수 씨(52)와 함께 절을 하고 있다. 화순=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지난달 15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가 6일 만에 무사히 구출된 데는 석해균 선장(58)이 선원들에게 몰래 보낸 ‘쪽지 지시’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김두찬 갑판장(61)과 정상현 조리장(57)이 해적의 시선을 교란하고 쪽지를 전달해 ‘석-김-정 마도로스 트리오’의 기지가 사건 해결의 수훈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6일 해경과 선원들에 따르면 해적들은 삼호주얼리호 근처에 헬기가 뜨거나 조그만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석-김-정 트리오를 인간방패막이로 조타실 바깥에 서 있게 했다. 선장 갑판장 조리장 순으로 조타실(브리지)에 대기시키면서도 이야기를 못 나누게 앞만 보도록 했다. 석 선장의 지시(오더)를 철저히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석 선장은 피랍 후 모든 선원에게 ‘소말리아로 가면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을 전파했다. 이후 키를 고장 내고 해도(海圖)를 볼 줄 모르는 해적들의 맹점을 이용해 좌표를 틀리게 하거나 수정하기도 하면서 배 운항을 최대한 지연시켰다. 그는 지난달 18일 최영함의 1차 작전 이후에는 감금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감시를 피해 쪽지나 책에 글을 적어 김 갑판장과 정 조리장을 통해 지시를 내렸다. ‘배를 세워라. 그것이 어려우면 배에 약하게 불을 질러라’는 지시는 1항사와 1기사에게 전달됐다. 작은 불이라도 나면 기관실 옆에 비치된 소화장치인 이산화탄소 용기가 터져 기관실 작동이 멈추기 때문에 내린 지시였다.

또 ‘엔진 피스톤을 뽑아라’ ‘전자키나 비상조타실을 고장 내라’ ‘발전기 배전반 회로 고장을 일으켜라’는 지시도 전달했다. 해적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책이라도 보라”며 이런 내용이 적힌 책을 툭 던져주기도 했다. 화장실이나 탈의실에 가는 척하면서 선원들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해 주던 김 갑판장은 1차 구출작전 뒤 폭행을 당해 앞니 3개가 부러지기도 했다.

김 갑판장은 해적들의 몽골 배 납치(1차 작전) 실패 책임을 모두 뒤집어썼다. 김 갑판장이 당초 해적들이 타고 온 배를 크레인으로 내려주면서 일부러 보트를 기울여 물이 들어오게 해 해군이 공격을 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제공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김 갑판장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자 정 조리장이 연락병 역할을 도맡았다. 그는 해적들이 석 선장과 김 갑판장에게 밥을 주지 말라고 하자 해적 조리담당자인 압둘라 후세인 마하무드(일명 압둘라 시룸·21)에게 사정해 끼니를 몰래 챙겨주기도 했다. 또 2차 구출작전 때 해적들의 인간방패막이로 제일 앞에 섰던 정 조리장은 김 갑판장에게 “형님! 석 선장을 구해야 합니다”라며 필사적으로 해적에 대항하면서 동료들과 후배 선원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

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갑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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